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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4-27 조회수 : 1857

성체를 영하지 않으면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인 이유 
 
 
어제 복음과 이어지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니코데모에게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중략)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요한 3,20.21)라고 하십니다.  
 
어제 ‘진리’는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정체성은 나에 대한 믿음입니다.
드라마 ‘파친코’에서 솔로몬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나게 하려고 할머니에게 사인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비를 맞으며 춤을 춥니다.  
 
그런데 일본에 살면서, 그리고 그런 정체성을 유지하는 힘을 얻지도 못하며 계속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 에너지를 주시는 분이 ‘빛’입니다.
그리스도는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가르침으로 우리의 정체성도 알려주시지만,
당신 피로 그 정체성을 유지할 힘도 주시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이제 코로나도 끝나가니 신자들이 본당에 나올 수 있게 하는 내용으로 글을 써 달라는 부탁받았습니다.
바빠서 안 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오늘 이 복음의 내용이 바로 성체를 영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내용과 직결됩니다.
진리는 TV로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진리에 힘을 실어주는 분은 성체이십니다.
따라서 성체를 영하지 않으면서 진리를 실천하겠다고 하는 이는 연료는 채우지 않으면서
차를 운전하겠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실제로는 운전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이 영성의 발전단계를 이해하려면 요한의 신학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요한은 율법과 진리와 은총을 구분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중략)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요한 1,14.17) 
 
오늘 말씀과 종합하면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길은 “율법 - 진리 - 은총”입니다. 율법은 사랑해야 함을 아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것이 십계명입니다.
그러나 진리로 나아오지 못하면 율법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율법에서 진리로 넘어오는 과정을 ‘회개’라 합니다.  
 
서울 변두리 경기도 시골에 사는 미경이. 삼 남매 중의 막내입니다.
시골은 서울과 대조되는 인간의 열등감을 상징합니다. 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서울에서 고군분투하지만 미정이는 남자친구에게 돈을 떼이고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서 일하는 구 씨에게 독촉장이 오도록 해놓습니다. 
미경은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개새끼들도 시작점은 다 그런 눈빛, ‘넌 부족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하찮은 인간이 된 것 같은. 우리를 지치고 병들게 했던 건 다 그런 눈빛들이었다.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고자 달려들었다가 자신의 볼품없음을 확인받고 돌아서는 반복적인 관계. 어디서 답을 찾아야 될까?” 
 
미경은 시골에서 술만 마시며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한 가장 보잘것없어 보이는 구 씨에게 말합니다. 
“왜 매일 술 마셔요?”
“아니면 뭐 해.”
“할 일 줘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조금 있으면 겨울이에요.
겨울이 오면 살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앉아서 보고 있을 것도 없어요.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예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돼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봄이 되면 당신도 나도 다른 사람이 돼 있을 거예요.” 
 
미경에게 사랑은 추앙받는 것입니다.
자신의 빈 가슴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약탈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이 보잘것없는 구 씨를 해방해 준다고 여깁니다. 구 씨는 말합니다.  
 
“너 남자한테 돈 빌려줬지? 사내새끼들도 여우야. 돈 빌려 가고도 적반하장으로 지랄 떨면 찍소리 못하고 찌그러들 여자. 알아본 거라고.” 
 
“그 자식이 돈을 갚으면 아무 문제 없을까? 그래도 똑같을 것 같은데. 한 번도 채워진 적 없고 거지 같은 인생에 거지 같은 인간들. 다들 잘난 척.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말. 말.”
“허. 미안하다. 나도 개새끼라서.”
구 씨는 마지막으로 일침을 날립니다.  
 
“너는? 너는 누구 채워준 적 있어?”
사실 그녀도 누군가를 채워준 적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 이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 구 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혹시 내가 추앙해 줄까요?” 
 
구 씨는 미경의 날아가 버린 모자를 찾아오기 위해 힘찬 도약을 시작합니다.
JTBC ‘나의 해방 일지’의 일부분입니다.  
 
미경은 “모든 관계가 노동”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모기이기에 관계란 자신의 노력으로 타인의 피를 빠는 노동이 맞습니다.
사람이 회개하기 전까지는 사랑을 내가 타인에게 무언가 해 주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진실을 깨달았을 때는 진리로 나아갑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요한복음에서 이 진실을 깨닫게 하는 대상이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여기서는 구 씨입니다. 사랑해야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러나 그 율법이 제대로 적용되려면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했다면 이제 ‘진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진리란 자신이 이제 추앙받을 존재가 아니라
남을 추앙해야 하는 존재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모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입니다. 
 
아무리 추앙하려 해도 이전과 같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믿음으로는 결코 자신 안에서 남을 추앙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몇 번 해보다 실망합니다.  
 
피노키오가 제페토 할아버지에게 만들어졌을 때 피노키오는 자신을 인간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교도 가지 않고 서커스와 타락의 섬으로 다니며 자신의 존재를 낭비합니다.
천사는 피노키오에게 겉은 나무 같지만, 인간임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나무는 거짓말해도 되지만 인간은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피노키오는 거짓말하면 안 되는 인간입니다.  
 
피노키오가 자신이 인간임을 자각하는 순간이 진리에 다다른 순간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어준 제페토 할아버지는 큰 고래의 배 속에 있습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바다에 나왔다가 고래에게 잡아먹힌 것입니다. 
 
피노키오는 할아버지를 구하러 갑니다. 할아버지만에 자신의 믿음을 강화해 줄 수 있습니다.
세상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람이요, 아들로 여기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죽음으로 오는 믿음, 그것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여기에서 진리를 거쳐 가는 ‘빛’과 같습니다.  
 
만약 내가 그리스도로 믿고 싶은데 성체를 TV로 미사 보는 것을 원한다면 말이 되는 것일까요?
피노키오가 자신이 인간이라면 아버지가 물고기 배 속에 있는데 구하러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성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지금까지 나를 추앙하게 만든 자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려면 죽음을 거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성체 안의 그리스도를 만나려면 죽음이라는 물고기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치지 않으면 내가 그리스도임을 믿을 수 없기에 성체로 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리와 빛은 하나입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가 성체로 나아오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하신 이유입니다. 
 
성체가 곧 빛이신 그리스도이시고 우리가 아는 진리를 실천할 유일한 힘입니다.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성체를 향해야 자신이 하는 일, 곧 진리를 실천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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