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피할 수 없다면 판단도 피하지 마라
저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치고 그것을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바보가 됩니다.
진화론이란 인간은 아주 오래전에 작은 생물체에서 시작하여 지금의 우리 모습으로
장구한 세월동안 진화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새인지 포유류인지 구분이 안가는 박쥐처럼 생긴 화석, 크로마뇽인 등과 같은 인간 전 단계의 화석들이 제시되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교를 믿는 아이들은 매우 큰 혼란에 빠집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진화론을 믿으면서도, ‘그래도 하느님은 계시다’라고 스스로 힘겹게 위안을 삼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진화론은 오히려 창조론보다 훨씬 비과학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몇 가지만 그 근거로 제시하겠습니다.
그 중 하나는 무생물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생겨날 수 있는지 누구도 증명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암모니아가 번개를 맞아 박테리아가 탄생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어떤 누구도 무생물을 생명체로 만드는데 성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은 생명 자체이신 하느님이십니다.
바위나 철을 들고 아무리 기다려보십시오.
거기서 생명체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 다음엔 그 진화과정이 전혀 화석으로 발견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뼈들이 발견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몇 개 되지도 않고 또 몇 조각 되지도 않는 것들로 상상해서 끼워 맞춘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그런 원숭이와 비슷한 두개골을 지닌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진화는 창조와 마찬가지로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인간이 된 시간보다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훨씬 오래 걸렸을 것인데
단 하나도 변화과정에 있는 온전한 뼈나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는 원숭이에서 인간 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종에 걸쳐 마찬가지입니다.
진화라고 치면 결과는 있는데 과정은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열역학 제2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일명 엔트로피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세상 모든 것은 열이나 에너지, 혹은 질서와 같은 것들을 잃어가면서 그로인해 발생하는 무질서하고 쓸모없는 쓰레기, 곧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법칙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주전자에 찬물을 집어넣으면 저절로 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끓는 물이 있으면 식어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모래 위에서 시계가 발견되었다면 그 모래들이 모여져서 시계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건물이 있으면 그 복잡한 것에서 더욱 무질서하게 무너져가는 것이 세상 이치라는 것입니다.
소문도 많은 사람을 거칠수록 그 진실에서 멀어져갑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물은 제 스스로 더욱 복잡한 형태로 끊임없이 이어져서 누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복잡한 인간이 탄생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만약 진화가 되었더라도 끊임없이 누군가가 더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 손을 쓰지 않았다면
박테리아에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습니다.
본래 진화론이 옳은지, 창조론이 옳은지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고자 하는 말은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내가 진화론을 믿는 것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누가 어떤 말을 하던 선택의 책임은 내가 져야만 하는 것인데, 우리 교육은 가르치는 대로만 따라야하고 그에 반대되는 생각을 안 하는 그런 사람에게만 점수를 잘 준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장의 말을 잘 따랐던 학생들만 빠져나오지 못했고, 그 말을 듣지 않은 많은 어른들은 살았습니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거의 80%가 나오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너무 말을 잘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교육이 나 스스로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도 스스로 판단해 행동할 수 없는 사람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교육은 무엇 하나도 스스로 판단하여 세상과 맞설 수 있는 사람이 나오지 못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하셨는데도 말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쳐도 스스로 아니라고 판단이 되면 그것을 인정해주고 오히려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 지도자들은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에게 돈을 주면서 예수님을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르치는 것들을 대부분의 유다인들이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이 모든 유다인들은 그들이 지도자들에게 속아서 그렇게 믿게 된 것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에 대해 증언하는 사람도 비록 소수이기는 하였지만 없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 반대 경우도 생각해보고 면밀히 검토해서 ‘내가’ 선택해 믿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겼다고 하셨다면, 세상은 예수님의 뜻과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이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따르면 잘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이들 때서부터라도 세상의 가르침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이들을 살리는 길입니다.
세상이 가르치는 대로 잘 적응하는 아이들이 아닌,
항상 ‘왜?’라는 물음을 던지며 스스로 판단해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아이들을 만들 수 있는 교육제도로 바뀌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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