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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2-08 조회수 : 1515

‘피’가 섞이지 않은 가르침은 ‘마음’까지 이르지 못한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그들이 따르는 율법 때문에 예수님께 질책을 당합니다.
그들이 먼저 손을 씻지 않고 식사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마음’이 없으면서 겉으로만 율법을 지킨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란 그 율법을 주신 이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들은 돈이 있어도 부모를 봉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이라 말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느님께 예물을 바치기 위해 부모를 공경하라는 율법을 어긴 것입니다. 
율법은 정신은 ‘사랑’입니다.
이들은 마치 코끼리인 줄 모르고 각자가 원하는 부분을 만지는 소경과 같습니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여 자신을 위해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에 대한 사랑이 없으니 그 율법은 자기 이익을 위해 쓰입니다.
예수님은 그 율법을 주신 분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오는 피를 받지 않으면 그들은 율법을 지킬 능력을 갖추지 못합니다.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가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나와 자신의 민감한 성격에 대해 말했습니다.
몸과 정신이 피폐해져 자주 병원에 입원하고 잠을 자도 15분마다 깨기도 하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살았습니다.
위도 일을 하지 않아 계속 마르는 상태입니다.
극초 민감함의 소유자가 되어 소위 번아웃이 온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시작된 동기는 2014년이었습니다. 아마 세월호 사건이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때의 아이들이 마치 자기 자신처럼 느껴졌을 수 있습니다.
아무 일에도 의미가 없고 음악 하는 것도 쓸데없는 일처럼 느껴진다면 두려움을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이런 증상이 있게 된 원인이 아버지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밖에서는 너무나 좋은 가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굉장히 폭력적인 분이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폭력을 가했습니다.
본인이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으면 불안했던 것입니다. 
대학 때도 통금 시간이 8시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목공소에 각종 크기의 매를 맞추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김윤아 씨는 이런 아버지의 이중적인 모습에 굉장한 분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불안하기 때문에 모든 감각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식동물은 소리에 매우 민감합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에 모든 에너지를 빼앗겨 민감해지고 몸과 마음에 병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은 그 분노와 두려움을 내뱉는 음악이었는데, 2014년 이후 그런 것까지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자녀가 잘되도록 매를 들고 가르쳐도 그 가르침에는 피가 섞이기보다
아이들의 피를 내는 폭력이 있기에 그 가르침은 사람을 피폐하고 만들었습니다.
쓸데없는 가르침을 넘어 피해를 주는 가르침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녀는 ‘증오는 나의 힘’이라는 노래에서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노래합니다.  
 
“고맙고 고마운 내 아버지, 당신을 죽도록 이토록 증오한 덕에 난 아직 살아있고….”
누군가의 가르침은 그 사람에게 고마울 때 따라주고 싶은 것입니다.
범법자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 이유는 먼저 자신이 사는 세상에 불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나라에 감사하면 법을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셔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은 인간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 안에 피가 섞여야 그 피가 그 사람의 자아를 죽이고 그 율법이 그를 이끌게 만듭니다.
부모에게 감사하지 못하는 아이는 그 부모의 가르침을 절대 있는 그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따르는 척하지만 결국 자기를 망칩니다.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은 그들에게 율법을 잘 지키게 해줄 그리스도를 보내주시어 당신을 더 사랑하도록 하신 것인데, 이것을 원치 않고 하느님을 실제로는 미워하면서도 그저 그 율법을 자기 자신들을 위해 사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법은 세 종류가 있습니다.
육체를 규정하는 법과 생각을 규정하는 법, 그리고 마음을 규정하는 법입니다.
육체를 규정하는 법은 무력을 쓰면 가능하고, 생각을 규정하는 법은 논리가 맞으면 됩니다.
그러나 마음을 규정하는 법은 ‘피’가 필요합니다. 이 피가 없으면 마음을 바꾸려 하면 안 됩니다.  
 
박보영 목사가 초기에 사목할 때 길거리에서 방황하던 가출 청소년들을 데려다 키웠습니다.
그들은 불량배들이었고 전과자들이었습니다. 처음엔 박 목사를 칼로 찌르려고 했는데
“조금 있다 찌르고 내 말 좀 들어봐라!”라며 복음을 전해 거둬들인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너무 없어, 라면 하나를 끓여 7~8명이 나누어 먹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배고픔을 못 이겨 도둑질하였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이유는 그들이 도둑질하고 온 돈을 십일조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인에게 발각이 되었을 때는 목사님이 직접 가서 아이들이 감옥에 가지 않도록 싹싹 빌었습니다.
어떤 때는 술에 취한 주인에게 매 맞은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목사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때뿐이었고 배고프면 또 도둑질하러 갔습니다.  
 
왜 아이들은 십일조는 지키면서 실제로는 변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 율법을 준 박보영 목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박 목사에게 얼마나 큰 아픔을 주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주인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나오는데 아이들은 심각하지 않은 듯 자기들끼리 웃고 농담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안 되겠다 싶어 박 목사는 교회에서 한 아이를 세워놓고 쇠파이프 막대기로 힘껏 때렸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막대기를 들려주며 “너희들이 나를 10대씩 때려라. 대신 9대 때렸다가 마지막 1대라도 살살 때리면 다시 때리게 할 테니 힘껏 때려라”라고 말했습니다.
두 아이에게 20대를 맞았는데 박 목사는 너무 아파서 마음속으로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너무 아파요. 더 못 맞겠어요.” 
 
박 목사는 세 번째 아이가 죄송하다며 때린 매에 허리 밑 꼬리뼈를 맞고 쓰러져 정신을 잃고 소리를 지르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매를 맞았고 그렇게 80대를 맞았습니다.
박 목사는 그 일로 거의 한 달 동안을 누워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허리가 안 좋아 항상 뜨거운 팩을 붙이고 다녀야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변화되지 않던 아이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더는 도둑질하지 않았습니다.
박 목사가 아이들에게 “왜 나를 때리고 나서 너희들이 변화되었느냐?”라고 물으니,
“세상이 다 가짜인 줄 알았는데 매를 맞고 뒹구는 목사님 모습을 보고 깨닫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전에 JTBC ‘유자식 상팔자’에서 ‘부모님의 잔소리에 대처하는 나만의 방법은?’이라는 질문에
‘반응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춘기 아이가 있었습니다. 
분명 아이는 자기만 100%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에게 버릇없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야단을 맞는 건데 엄마가 잘못했다는 건 잘못 생각하는 거지. 엄마랑 너랑 싸우는 관계가 아닌 거야.
난 부모고 넌 자식이야! 네가 엄마에게 야단을 맞는 관계지.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엄마를 무시하는 거야, 네가.” 
 
아이에게 아이는 엄마에게 당연히 순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가르침과 함께 피를 원하는 것입니다. 
고맙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말을 안 들으면 “피가 모자라는구나!”라고 생각해야지, “난 부모고 넌 자식이야!”로는 안 됩니다.
율법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율법을 주는 이가 ‘고마워서’ 율법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피’가 빠진 말은 그저 폭언이 되고 잔소리가 될 뿐입니다.
나의 가르침에 항상 나의 피가 섞여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모습으로 변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매일 하느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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