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7일 [연중 제3주간 목요일]
마르코 4,21-25
더 가지는 사람이 되면 얻게 되는 것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마련이라고 하시면서,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이야기의 흐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 중이셨느냐면, ‘씨뿌리는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는 중이셨습니다.
씨는 곧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성령의 물과 햇빛의 따듯함으로 우리 안에서 자라나면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 교만의 딱딱함과 육체의 돌멩이와 탐욕의 가시를 뽑는 일도 해야합니다.
이렇게 맺힌 사랑을 가진 이가 진정 가진 사람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느님을 가진 이는 정녕 가진 자이고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더 받게 됩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에 찌들었던 두메산골 소년이 덴마크 국왕과 이스라엘 대통령의 도움으로 유학 가서 박사가 되고 대학 총장이 된 사례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머슴인 데다가 8남매가 부대끼며 살아야 했던 가난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초등학교를 보내준 덕택에 읍내에 나가 어렵게나마 중학교까지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갖은 고생 끝에 야간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그는 농업기술이 발달한 나라에 가서 농촌을 잘 살게 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 『새 역사를 위하여』란 책을 읽고 덴마크의 황폐했던 농촌이 세계적인 복지국가로 탈바꿈한 기록을 읽은 후 무작정 덴마크 유학을 결심합니다.
1960년대 돈도 없는 학생이 유학을 외국으로 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무모한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13년 동안 이 꿈을 버리지 않고 기도하던 중에
덴마크 국왕에게 편지를 쓰라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내가 오직 바라는 건 한국 농촌이 잘 사는 것입니다. 당신네 나라처럼 훌륭한 나라에서 배워 우리 농촌을 잘 살게 하는데 내 인생을 바치겠으니 생활비와 전액 장학금을 좀 줄 수 없겠습니까?”
당시는 대사관도 없어서 백과사전을 뒤져 왕궁 주소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40일 후에 답장이 왔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기간,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책임을 지겠다.”
아이가 집에서 마음대로 물건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집이 부모님 것이고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남의 집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모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라면 어떨까요?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고작 80달러를 가지고 덴마크 유학길에 오릅니다.
그곳에서 다른 나라들의 농촌개발 사례들과 그 이론적 배경에 집중하여 연구했지만, 덴마크와 우리나라와의 격차가 너무 커서 바로 적용할 수 없다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여긴 이스라엘 대통령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스라엘 대통령도 그의 청을 들어주어 그는 이스라엘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진 것이 없다고 믿을 수도 있었지만, 하느님을 가졌기에 다 가졌다고 여기니 다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진 자의 특징입니다.
없다고 믿으면 있다고 여기는 것까지 잃게 됩니다.
돌아온 그는 건국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농촌운동을 하고 이후 건국대학교 부총장을 지내고 2002년에 ‘농촌 청소년 미래재단’을 설립하여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사업과 청소년 건전육성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류태영 박사는 그의 책 『언제까지나 나는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한번은 신문을 넣고 돌아가려는데 쓰레기통에 밥 덩어리가 버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파 참지 못하고 주위를 살펴보다가 얼른 그것을 집어 들었다.
묻은 연탄재와 모래를 떼어내고 그 밥을 다 먹어치웠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나는 쓰레기통의 밥이나마 먹을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또 그의 책 『꿈과 믿음이 미래를 결정한다』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감사하다’는 말이 가득하여 있다는 점이다.”
감사한 사람이 다 가진 사람입니다.
감사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무너집니다.
그런데 그 감사는 하느님을 가졌을 때 옵니다.
연탄재 묻은 밥을 먹을 때도 하느님이 주신 것이니 감사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가진 사람이 결국 다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세상 모든 것이, 곧 나의 생명, 공기, 환경, 만나는 모든 사람까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2021)은 말 그대로 ‘위를 보지 마!’란 내용입니다.
대학원생 ‘케이트’와 ‘랜달’ 교수는 우연히 지구로 돌진하는 혜성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6개월 뒤 지구에 충돌하게 되고 지구의 생명체는 멸종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 단계를 거쳐 그들은 미국의 대통령을 만납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일은 재선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을 무시합니다.
케이트와 랜달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유명 생방송 TV 프로그램에 나가 모든 사실을 폭로합니다.
그러나 언론은 시청률을 끌어올려 돈을 더 버는 게 목적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웃음거리로 만듭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지지율이 떨어지자 혜성 충돌 상황을 일부러 대대적으로 언론에 뿌리고 안정을 추구하겠다는 약속으로 재선에 성공합니다.
우주로켓을 발사해 혜성의 방향을 바꾸겠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거대 스폰서인 대기업 회장이 혜성이 엄청난 가치의 천연자원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것을 폭파해 잘게 쪼개서 지구에 떨어뜨리자는 제안을 합니다.
대통령도 이를 허락합니다.
대통령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위는 쳐다보지 말고 그냥 살라고(돈 룩 업) 말합니다.
다른 국가들에서 혜성의 방향을 바꾸는 로켓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어쩔 수 없이 혜성을 쪼개는 방법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계획 역시 수포가 됩니다.
이제 죽는 일만 남았습니다.
함께 고군분투했던 케이트와 랜달은 랜달의 집에 모여 최후의 만찬을 벌입니다.
랜달은 아내와 가족들에게 그동안 잘못한 것들에 대한 용서를 청하고 포도주를 마시며 마지막을 맞습니다.
결국, 우리가 챙겨야 하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을 가져야만 얻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돈과 명예와 즐거움.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들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갖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하느님을 가진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을 전하며 얻어지는 전우애. 그리고 그 전우애 안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행복입니다.
관계가 행복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지속하면 천국이 됩니다.
우리는 자아를 가지고 탐욕과 쾌락과 교만을 추구할 것인지, 하느님을 가지고 사랑의 소명을 추구할 것인지
결정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것이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양식이 되셨습니다.
내가 맺는 열매로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