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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1-26 조회수 : 1270
1월26일 [티토 주교 기념일]
 
독서 : 2티모테오 1,1-8
 
하느님의 은사 불 붙이는 법: 고통과 멸시의 부싯돌을 사용하라
 
오늘은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입니다.
성 티모테오와 티토 주교는 성 바오로 사도가 ‘안수’를 통해 지명한 지역 주교들입니다.
안수는 자신이 받은 은사를 전해주는 교회의 오랜 전통적인 방법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2티모 1,6)
이 말씀은 ‘은사’는 내가 불태우려는 노력이 없으면 불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마치 자동차의 기름처럼 내가 시동을 걸고 달려야 불탑니다. 
 
사제들도 악령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은사를 잘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은 그 은사를 받은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인데, 이는 그 은사를 사용해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사목 서간을 통해 그 은사를 불태우는 방법을 이렇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2티모 1,8)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그분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불태우는 방법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청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실 때 “고통과 멸시를 주십시오”
라고 청했다고 합니다. 
이는 자신이 받은 은사를 무용지물이 되게 하지 않으려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청한 것과 같습니다. 
 
다윗이 형제 중에 선택되어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은 은사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사가 바로 발휘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도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그는 그 은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였습니다.
반면 다윗은 그 은사를 믿고 골리앗과 맞섰습니다. 
그 무모한 도전이 은사에 불을 붙인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해 우리 상황을 어려운 처지에 몰아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받은 은사에 불이 붙습니다.
머리에 부어진 기름이 십자가와 결합할 때 후광이 되는 것입니다. 
 
김경일 인지심리학 교수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이런 실험을 많이 하였다고 합니다.
1반부터 4반까지 있는 평범한 아이들이 있는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 각기 30분씩 들어갑니다.
여러 도형이 15개 그려진 그림을 보여줍니다. 
 
1반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얘들아, 너희는 이 도형 중 각자 5개씩 골라서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들어봐라.”
그러면 아이들은 특이한 도형은 절대 고르지 않습니다.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입니다.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네모와 동그라미 등으로 기차나 자동차를 만듭니다.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집을 만든다고 합니다. 
 
이젠 2반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얘들아, 마음에 드는 도형 다섯 개 골라라.”
그러면 아이들은 특이한 도형들을 고릅니다. 
그제야 이렇게 말해줍니다. 
“네가 고른 다섯 개로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들어봐라.”
아이들은 난감한 표정을 짓습니다. 
하지만 꽤 재미있고 신기한 것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젠 3반에 들어갑니다. 
거기서는 도형을 아예 안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들려면 무엇을 만들래?”
지구 평화를 지키는 로봇, 남북통일을 시킬 수 있는 무기, 영원히 충전하지 않아도 되는 스마트폰 등
엄청난 것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제 서서히 도형들을 보여줍니다. 
“너희가 말한 것을 이 도형 중 다섯 개를 골라서 만들어봐라.”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다섯 개를 골라서 작업을 합니다. 
 
4반에 들어가서는 마찬가지로 먼저 만들고 싶은 것을 정하게 하고 나중에 도형을 보여준 다음에 다섯 개를 고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합니다. 
“다 골랐으면, 옆 사람과 바꿔!”
경상도 학교에서 이 실험을 할 때 한 아이가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교수님, 이거 아동학대 아닙니까?”
 
결과는 평범한 3반과 4반 아이들이 만들어낸 것들이 우리나라 3학년 아이 중 세계 학생 창의력 올림피아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아이들에게 같은 그림으로 만들라고 한 것보다 창의력 점수보다 2~3배 이상 나온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은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자신의 능력을 더 끌어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능력도 아드님이 돌아가실 때 가장 완전히 드러납니다.
십자가의 희생, 그것은 고통과 멸시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 사랑이 가장 완전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능력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안에 내재하여 발휘되고 있지 못한 능력들은 가장 먼저는 능력이 있음을 믿지 못하고, 그다음은 우리가 우리 환경을 십자가의 고통과 멸시의 환경으로 만들지 못해서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써 발휘된다는 것을 믿으면 못 할 것이 없게 됩니다.
그러니 자신을 어려움 속에 몰아넣을 수 있는 것도 능력입니다. 
 
슈퍼맨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은 슈퍼맨이 한 인간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갈 때는 큰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아버지가 토네이도에 날아가 사망하기 직전에도 아들은 자신의 정체를 들킬 수 없어서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가 죽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새로 태어납니다.
 
자신의 참 아버지, 곧 자신이 타고 온 우주선에 입력된 아버지의 말을 통해 진정한 슈퍼맨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배트맨도 부모의 죽음으로 탄생한 캐릭터입니다. 
모든 히어로가 탄생하는 데 나의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누군가의 죽음이 전제되지 않는 히어로는 하나도 없다시피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능력과 은사가 있어도 그것을 누르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바로 나를 지배하고 있는 나의 자아입니다. 
그 자아가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것은 고맙지만
이제 참 아버지의 능력이 발휘되게 하기 위해서는 자리를 비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아가 나 자신이기에 나 자신을 죽이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서는 세례 때 받은 아버지의 능력이 발휘될 수 없습니다.
애벌레가 나비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전의 나를 죽이는 고치가 되는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가장 좋은 방법이 ‘고통과 멸시’를 즐기는 것입니다. 지금이 뭐 중세시대냐고 말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2티모 1,7) 라고 말하며, 주님을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또 그분 때문에 감옥에서 고통당하는 자신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하며,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내 안의 은사가 어떻게 발휘되는지 명확히 안 것입니다. 
 
추워 얼어 죽어가고 있는 동굴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기름을 받았습니다.
그 기름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부싯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부싯돌을 십자가를 위한 ‘고통과 멸시’로 보아야 합니다.
이 두 부싯돌을 부딪치면 불꽃이 튀어 내 안의 은사에 불을 붙입니다.
그러면 교회에서 필요한 진정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일원으로 교회에 머물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복음 때문에 고난을 겪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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