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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2-18 조회수 : 1161

소리기도와 관상기도 사이에서의 묵상기도의 역할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와 결혼하라고 하며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는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태오는 이 예수라는 이름을 이사야서에 예언된 ‘임마누엘’과 연결합니다(이사 7,14 참조).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셔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고 그 함께 계셔주심을 곧 우리를 죄에서 해방해 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예수님께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우리와 함께 계셔주시면 우리가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와 함께 머물며 나를 바꾸려 한다면 나의 의지보다는 그 사람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자칫 이것은 의처증이나 의부증처럼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타인의 ‘자유’를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타인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피그말리온’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 키프로스의 조각가였습니다.
피그말리온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여사제들의 문란한 모습을 보고 여인과의 사랑에 환멸을 느낍니다.
그는 순결한 여성을 만들기를 원했고 상아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조각하여 갈라테이아로 이름까지 지어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면을 갖춘 여인이라 믿으며 갈라테이아를 사랑하였습니다.
그 조각상에 키스하거나 포옹하기도 했으며 비싼 옷과 꽃과 보석으로 장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아내라 불렀습니다. 
 
아프로디테를 위한 축제의 날,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아프로디테에게 한 가지 청을 합니다.
‘상아로 만든 처녀’를 자기 아내가 되게 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아프로디테는 그러겠다고 약속했고 집으로 돌아온 피그말리온이 갈라테이아에게 키스하자 갈라테이아는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둘의 결혼을 축하해주었고,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는 훗날 파포스라는 이름의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잘못된 사랑의 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갈라테이아는 한 인격체가 아니라 인간이 되어서도 여전히 조각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녀에게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사랑 이야기가 제대로 완성되려면 인간이 된 갈라테이아가 자신을 선택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그 시간이란 피그말리온이 갈라테이아를 혼자 남겨두어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의미합니다.
만약 피그말리온이 계속 눈앞에 있다면 갈라테이아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변화시키시기 위해 ‘임마누엘’이 되신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함께하시기 위해서는 당신이 눈에 보이지 않도록 잠시 떠나있으며 인간에게 묵상할 시간을 주시는 것이 맞습니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함께 있어서 변화시킬 수 있는 한계는 육체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육체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계에서도 이런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납니다.
감독이 여배우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고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요제프 폰 스턴버그’ 감독과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관계입니다. 
 
스턴버그 감독은 당시 무명 배우였던 디트리히를 과감하게 ‘푸른 천사’의 롤라 역으로 캐스팅합니다.
그리고 그 영화는 디트리히를 완벽히 스타로 재탄생시킵니다.
스턴버그는 디트리히를 할리우드로 데려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변신시킵니다. 
 
우선 몸무게를 13kg이나 빼게 했고 이를 뽑아 광대뼈가 더욱 두드러지게 하였습니다.
눈썹을 잡아당겨 높게 하고 코에 명암을 주어 콧방울이 좁아 보이도록 했으며 머리에는 금가루를 뿌려 빛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의상도 손수 골라서 입혔습니다.
스턴버그는 카메라와 조명,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디트리히의 얼굴만 있으면 숨 막히는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둘의 관계는 오래갔을까요? 그나마 오래갔습니다. 둘은 8년을 연애했습니다.
문제는 둘 다 유부남, 유부녀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그녀에 대한 스턴버그의 소유욕과 집착이 둘의 관계를 파경으로 치닫게 하였습니다.
훗날 디트리히는 “그는 나를 자기의 갈라테이아로 만들 생각밖에 없었다”라고 토로하였습니다.
그녀가 떠나자 스턴버그는 불면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렸으며 감독으로서도 퇴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와 비교하여 닉 부이치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팔다리가 없었던 닉 부이치치는 8살 때 이미 자살 시도를 했고 아내의 손을 잡고 걸을 수도 없는 자신과
누가 결혼해 주겠느냐는 걱정을 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닉 부이치치’는 일본계 미국인 ‘카나에 미야하라’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는 미야하라에게 첫눈에 반하여 사랑을 고백했지만, 미야하라는 평생을 그 사람과 함께 살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때 닉 부이치치는 자신들의 사랑을 하느님께 맡겨보자고 합니다. 
1년 동안 만나지 말고 1년 뒤에 다시 만났을 때 서로의 사랑이 더 증가하였다면 그것을 하느님께서 사랑을 허락해 주신 표징으로 믿자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미야하라는 단 몇 번 본 그 팔다리 없는 사람을 1년 뒤 더 사랑하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년 뒤 그녀는 하루하루 닉에 대한 사랑이 더 증가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상대를 깊이 생각하며 내린 결정은 나중에 거의 바뀔 일이 없습니다.
나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우리 눈에 보이시지 않는 이유는 우리도 묵상하여 주님을 자의로 받아들일 시간을 주시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멀어지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정말 사랑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사랑이 더 증가합니다.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랑이 감소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기에 일찍 그 관계를 접는 게 낫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참사랑은 비로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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