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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2-15 조회수 : 1315

예수님께 자주 질문하는 것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오늘 복음도 역시 세례자 요한에 관한 내용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제자 두 명을 불러 예수님께 보냅니다.
그리고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묻게 합니다. 
 
이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의심해서가 아닙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임을 알고 있었고 세례 때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오시며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인정하시는 목소리도 들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들을 예수님께 직접 보내어 그분께 질문하고 직접 답을 들을 수 있도록
인도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문 안 하기로 유명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서 특별히 한국 기자들에게만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몇 번이나 질문하라고 했지만,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한국말로 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한 동양인 기자가 일어나 아시아를 대표해서 자신이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중국 기자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 한국 기자들의 시간이니 앉으라고 했지만, 그 기자는 한국 기자들이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 기회를 넘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고 아무도 질문하지 않자 결국엔 중국인 기자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어떤 교수님이 첫 대학 강의를 하기 위해 긴장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선배가 아주 좋은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괜찮아. 학생들은 아무도 질문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 조언은 적중했습니다. 
그는 그저 말하고 학생들은 받아적었습니다.
“질문 있습니까?”란 교수의 말은 “수업 끝났으니 가방 싸세요”와 같은 말이었습니다.
저도 외국에 나가 수업을 듣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질문하지 않는 이유는 겸손해서일까요? 질문할 필요가 없는 교만의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을 다 알려주고 세상으로 나가면 남이 하는 대로 하면 됩니다.
질문할 이유도 없고 여유도 없습니다. 
 
질문은 누군가 믿는 사람에게 하게 되어있습니다. 거짓말쟁이에게 질문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학생들이 질문하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을 믿지 타인을 믿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질문하지 않으면 이 세상을 이기고 구원될 기회도 잃을 수 있습니다. 
 
영화 ‘페르마의 밀실’(2007)입니다. 
서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네 명의 수학자가 위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달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초대로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놓인 것은 제한 시간인 1분 이내에 문제를 풀지 못하면 사방이 오그라드는 밀실뿐입니다.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제를 푸는 것뿐이지만 아무리 천재들이라 해도 역부족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네 명 중 한 명이 이 장치를 만들어 꾸민 짓이었습니다.
35년 동안 어떤 가설을 증명하려 했는데 증명 10일 전에 그 기회를 젊은 수학자에게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 젊은 수학자는 골드바흐 가설을 증명하지 못했었습니다.
그저 관심을 끌려고 풀었다고 한 것뿐이었던 것입니다. 
 
일인자가 되지 않는 이상 함께 죽기로 작정하고 이런 일을 벌인 그 사람을 어떤 사람이 분노로 기절시켜버립니다. 
방은 점점 줄어들어 시간은 없는데 유일하게 나갈 방법을 안 사람을 기절시킨 것입니다. 
 
그 방을 만든 사람이 그 방과 함께 죽기를 원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람이 자신들에게 이 고생을 시키고 있다며 유일한 탈출구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묻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알아서 해결해보겠다고 하느님을 자신 안에서 기절시킵니다.
하지만 하느님도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자녀가 주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면 이제 자녀들이 하느님께 질문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나 혹은 자기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부모는 자신보다 아는 게 없다고 여기게 되고 하느님께 물을 줄 모르게 되면 이제 자기 자신에게 묻고 자기 자신이 내린 해답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나에게 묻고 내가 내린 답대로 하면 그것이 교만입니다.
아이가 부모를 믿고 부모에게 이것저것 다 물어볼 때 아이는 행복합니다. 
 
이런 면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녀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줍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 위에 내리는 구름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성막도 이동하고 이스라엘 백성도 이동하였다고 합니다. 
 
성막을 만들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막은 감사의 봉헌으로 내 안에 만들어진 주님의 집입니다.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는데 주님께서는 그때그때 나를 향한 당신의 뜻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그분의 뜻에 나를 맡길 때 내가 그분과 하나가 됩니다. 
뜻이 일치하면 그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와 누구에게 질문하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참다운 스승은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누구에게 질문해야 할지 제대로 알려주는 스승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커져 온전히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행복한 길임을 믿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스승이요, 부모가 됩니다. 
하느님께도 질문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자기 자신만 믿는 교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분은 하느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주 예수님께 질문을 던져야 교만에서 벗어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 믿음과 깨달음과 구원을 얻게 됩니다. 
자주 예수님께 질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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