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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2-11 조회수 : 1191

세례자 요한의 역할을 이해 못 할 때; 부모도 자녀에게 사이비 교주가 될 수 있다
 
오늘도 세례자 요한에 관한 복음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타볼산에서 변모하시고 내려오는 중에 제자들이 묻습니다.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예수님은 율법 학자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 엘리야가 바로 세례자 요한이라고 설명하십니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그리고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하면 당신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율법 학자(모세) – 엘리야 – 메시아’에 관한 순차적인 구원의 과정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율법학자는 타볼산에서 만난 모세이고 모세는 율법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다음 엘리야가 필요하고 마침내 이 두 단계를 거치면 메시아가 구원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확히 알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 종교 안에서도 하나에 지나치게 집중하거나 약간 교리를 바꾸어
돈벌이하는 사이비들을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오늘은 모세-엘리야-메시아의 순차적인 구원의 과정을 통해 어떻게 우리 종교 안에 스며들어있는 사이비적인 요소를 찾아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자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딸이 어렸을 때 받은 상처에 대한 탓을 너무 부모에게만 돌린다는 이유였습니다.
물론 부모로서 키우면서 딸에게 부족한 사랑을 준 것은 인정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힘든 이유를 지나치게 부모 탓만 하니 더는 견디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몇 년 동안 가톨릭 신자들로 구성된 영성 심리 학회에서 교육도 받고 피정도 하고 상담을 한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당연히 지금 상태가 좋지 못한 이유는 어렸을 때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영향이 가장 크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저도 모든 심리적 문제는 사랑을 부족하게 받아서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방법에 머물게 만드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엘리야는 사랑하지 못하는 탓을 남에게 돌리게 하지 않습니다. 자아와 삼구에 돌립니다.
심리학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방법을 따라야 하며 부모에게 용서를 받게 하고 자기 자신을 믿고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역할이 강조된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율법이고 모세입니다. 
그러나 이것에만 머물면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이제 초점을 나 자신에게 돌려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용서를 청해서 그 상처가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그 상처 받은 자아를 죽이기 위해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려주는 것이 엘리야의 역할입니다. 
 
왜 이미 성인이 되었으면서도 그래도 할 만큼 한 부모 탓을 하게 만듭니까?
부모가 부족했어도 부모는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세상에 누가 완벽합니까?
엘리야는 우리 시선을 자아로 이끌고 그 자아를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음을
깨닫게 만드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엘리야는 가르멜산에서 우상 숭배자들에게 이끄는 예언자들의 목을 쳤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는 시합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우리 문제가 그리스도의 피, 곧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음을 명확히 일러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이비들은 무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자아와 삼구를 죽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자신들이 하는 기도회나 상담, 피정,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어떤 방법들을 통해서 어렸을 때의 상처를 치유하라고 하며 그리스도의 피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자신들이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치장합니다.
그렇게 돈을 버는 것입니다. 
혹은 자기 존재감을 느끼는 것을 즐깁니다. 
 
모든 것은 나의 문제고 그리스도의 피로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알리는 엘리야의 역할을
본인들이 하려고 하는 이들이 사이비입니다. 
자신들의 역할을 강화하며 그리스도의 역할을 감소시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자신들의 노예로 만듭니다. 
대부분의 사이비는 이렇게 엘이야가 와야만 하는 필요성을 무시합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사이비의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나 없으면 어쩔 뻔했냐?”라고 말하는 사이비들을 조심하십시오. 
엘리야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서만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표지판과 같은 존재입니다. 
요한은 자신 안에 사람들을 잡아놓지 않습니다.
어린양께 자기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을 보냅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요한의 제자들이었고 요한은 그들이 예수님께 떠나는 것을 기뻐합니다.
자신은 작아지고 그분은 커지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이비는 자기가 커지며 예수님의 역할을 줄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을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이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자유를 구속합니다. 
 
영화 ‘새크라멘트’(2014)는 마약에 빠진 누나가 어느 종교단체에 들어가는데 친동생에게 이곳이 너무 좋다고
한번 오라고 초대장이 와서 친구 두 명과 함께 누나가 있는 곳으로 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습니다.
이는 남아메리카 가이아나 존스타운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입니다.
그곳의 교주 짐 존스는 900여 명의 신도에게 에덴동산과 같은 그곳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엄청난 추앙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그런데 무장한 사람들에 의해 보호되고 있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동생과 기자들이 떠나는 날이 되자 그곳에서 소란이 일어납니다.
행복하기만 하다고 말하던 그들이 자신들도 데려가 달라고 청하는 이들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자 짐 존스는 무장한 부하들에게 그곳을 떠나려는 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였고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질 것이 당연시되자 남아있는 이들 또한 독극물을 마시고 자살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수백 명의 아이와 함께 900여 명이 자살하거나 피살된 이 사건은 911 테러 이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왜 9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사이비에 빠져 목숨을 잃게 된 것일까요? 그들이 엘리야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모든 문제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고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의 십자가 희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인도자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기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마치 자기를 통해서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하면
그것은 사이비입니다. 
 
엄마도 사이비 교주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는데 자녀의 종교적 자유를 주지 않는 부모도 어느 정도는 사이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영성체를 했다면 이제 자녀와 부모는 하느님 앞에서 같은 형제·자매들입니다.
서로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선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여기서까지 부모가 자녀들에게 종교를 강요한다면 부모가 사이비 교주가 됩니다.
사랑은 강요하지 않는데 본인도 구원에 들지 못했으면서 본인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너희는 나 없으면 어쩔 뻔했니?”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어쩔 뻔했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본인이 예수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항상 자신은 작아지고 그분은 커지게 해야 합니다.
엘리야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 커지면 그것이 곧 사이비가 되는 것입니다.
 
사이비에 빠지지 않도록 ‘율법 – 엘리야 – 메시아의 고리’를 명확히 이해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모두 엘리야고 요한입니다. 
우리는 작아지고 그분은 커지셔야 합니다.
구원은 내가 아니라 그분에게서 옵니다.
그리스도 앞에 서 있으면서 나의 역할을 줄여가지 않는 사람은 사이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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