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12월 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2-04 조회수 : 1747

목자의 역할은 양들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왜 뽑으셨고 어떤 역할을 하도록 파견하셨는지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당신 손수 온 마을을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군중에게 당신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들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가 꺾여 있었다.”라는 동사는 “흐립토”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지쳐 넘어짐을 의미합니다.
삶에 지쳐 넘어진 이들을 일으켜 세워 다시 힘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목자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참 많은 목자가 존재합니다. 
부모님도 자녀에게 목자고 학교 선생님도 목자이며 물론 사제들도 목자입니다. 
이들의 역할이 기를 세워주는 것인데, 가끔은 이들이 양들의 기를 꺾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 자체가 기운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운은 바로 ‘성령’을 의미하는데 그들도 그것을 받지 못하니 남에게도 줄 수 없습니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3천 원짜리 김치찌개 파는 이문수 신부’의 에세이『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의 내용입니다. 
이문수 신부는 낙담하고 좌절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청년들이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청년 밥상 ‘문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식주의’라는 곳에서 인용합니다. 
 
“김치찌개 3천 원, 무한리필 공깃밥은 공짜. 개업 이후 거의 매달 적자를 내는 이 식당의 주인은 바로 저입니다.
저의 원래 직업은 ‘가톨릭 신부’인데요, 어쩌다 보니 4년째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김치찌갯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식당 사장이 되기로 한 건 고시원에서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난 청년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난 다음부터였습니다. 
저 역시 한때 ‘배고픈 청년’이었습니다. 
한 달간 세 끼를 모두 라면만 먹거나 빵 한 봉지로 끼니를 때운 적도 있었습니다. 
입시도 취직도 더 힘들어진 지금의 청년들은
그때의 저보다 두세 배는 더 고단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테지요. 
 
저는 누구나 언제든 와서 편안한 마음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당’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흐르길 1년여. 후원금 3천만 원으로 밥집을 열 공간을 찾다가 지금의 이 건물을 발견했습니다. 북한산 전경이 보이는 옥상을 보자마자
청년들이 이곳에서 잠시나마 숨을 쉬고, 위로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인력과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메뉴는 김치찌개 하나로 정하고, 가격은 대학교 학식의 평균 가격인
3천 원으로 정했습니다. 
학당을 하다 보니 신부로서 일만 할 때와 다르게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오픈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영하 10도 이하의 혹한이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식당을 찾았습니다. 
얼른 팔팔 끓는 찌개를 대접해 몸을 녹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급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이가 저를 수줍게 불렀습니다. 
그러고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대더군요.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가 말씀하셨죠.
‘제가 식당에 관해 설명했더니 아이가 1년 넘게 모은 저금통을 기부하고 싶다고 해서요.’
 
엉겁결에 받아 들었는데 세상에, 나중에 세어보니 10만 원을 훨씬 넘는 금액이었습니다.
열 살짜리에게 그것이 얼마나 큰 돈이었을까요. 누군가를 위한 돼지 저금통에 차곡차곡 모아놓은 그 정성과 선량함이 저를 더 열심히 일하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50대 여성이 어둑해진 저녁에 식당에 들어와서 김치찌개에 밥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그러고는 계산을 하겠다면 카운터 앞에 섰습니다. 
돈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손님이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여기 계신 손님들 것까지 다 계산해 주세요, 신부님.’
 
손님은 그렇게 모두의 밥값을 계산하고 가셨습니다.
각자 계산할 때가 되어서야 청년들은 비로소 누군가 밥값을 대신 내주고 갔다는 이야길 듣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자신에게 벌어지다니 너무나 놀랍다고들 했습니다.
그러고는 덧붙였죠.
‘저도 기회가 되면 다른 사람을 꼭 도울께요.’
아마 그 손님께서 가장 듣고 싶으셨던 말이 아닐까요.
 
최근에는 김치찌개 식당을 운영하는 식당 지기로 사는 삶을 크게 변화시킨 계기도 있었습니다.
식당을 이대로 유지할 것인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버겁더라도 점포를 늘릴 것인가 고민하던 시점에
‘유퀴즈’ 섭외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방송에는 게스트 몇 명 중 하나로 짧게 나갈 테지만, 식당이 분점을 내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렵게 녹화를 마치고 4월 21일에 본방송이 나갔습니다. 
놀라운 일은 그다음 날부터 일어났습니다.
후원 문의로 전화가 불이 났고, 가게에는 손님들이 줄을 섰지요.
모두 파김치가 되어 뻗어 있는데 한 직원이 저를 다급히 부르더군요. ‘신부님…. 이것 좀 보셔야겠는데요.’
 
제 눈앞에 놓은 것은 유재석 씨가 아무 말도 없이 5천만 원의 후원금을 입금하신 통장 내역이었습니다. 
‘아무리 유재석 씨라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큰돈을 주시죠?’
유재석 씨의 기부가 기뻤던 이유는 액수 때문이 아닙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에게 자부심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치지 않을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신 것이죠.
저는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우리 식당이 유지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돈보다는 마음들이 모여서 말이지요.”
 
유재석 씨나 이문수 신부님이나 모두 같이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기를 살려줄 수 있을까?’입니다.
이런 분들이 오히려 기를 받는 것 같습니다. 
참 목자들입니다. 
 
저에게 참 목자는 유학할 때의 논문지도 교수님이었습니다.
제가 로마라는 곳에 다시 가게 되었을 때 저는 한 목자만을 생각하였습니다. 
바로 ‘죠르지오 마짠티’라는 교수입니다.
제가 석사 때 성경을 공부할 때는 기가 많이 꺾여 있었습니다. 
그때 지도교수님은 기를 많이 꺾으시는 무서운 분이었습니다.
논문을 열심히 써가면 그냥 쓰레기라고 하시며 몇 장을 다 읽어보지도 않고 커다랗게 빨간 볼펜으로 엑스를 그리고 툭 집어 던졌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다시 돌아가기 두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의 신학 교수였던 마짠티 교수님은 기가 넘쳤습니다. 
찢어진 옷을 입고 허름한 옷을 입었지만,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으셨습니다.
한 번은 제가 석사 때 성서 교수와 다른 사람 논문 심사 때 논쟁이 벌어졌는데, 마짠티 교수는 신약에 “새로운 계약”이란 말이 희랍어로 그대로 나온다고 했고 성서 교수는 그런 말은 안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들이 보면 옆집 할아버지 같은 저희 교수님이 희랍어 성경을 가져오라고 해서 그 말을 찾아내 증명해 보이니 성서 교수는 오히려 창피를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제관에 가난한 사람들을 들여 함께 살고 학교에 와서는 주류 세력들에 주눅 들지 않고 그렇게 싸우시고
학생들에게는 걱정하지 말라며 당신이 밤을 새우시며 우리 논문을 고쳐주셨습니다.
학생들은 그분의 편이었고 학교의 높으신 분들은 이분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그 신부님을 매우 좋아했는데 언어가 딸리는 우리 마음을 아시고 손수 다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엑스를 하고 화를 내던 성서 교수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러니 저도 사제가 되어 다시 유학을 나갈 때는 성서를 포기하고 교의 신학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다른 학교로도 갈 수 있었지만 저는 그 교수님께 배우고 싶었습니다.
로마라는 두려운 곳에서 저에게 기운을 불어넣을 참 목자라고 여겼기 때문이고 덕분에 저는 기죽지 않고 5년 동안 그분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어떤 목자는 기가 살았고, 어떤 목자는 기가 꺾여 있을까요? 
삼구 때문입니다. 
죄는 성령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습니다.
따라서 육체와 세상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본인 자신이 기가 꺾여 있어서 남에게 기를 줄 수가 없습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