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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2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1-29 조회수 : 1478
11월29일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마태오 8,5-11
 
하느님에 대해 묵상한다고 다 믿음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이 나옵니다. 백인대장은 예수님께 자신의 종을 고쳐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고쳐주시겠다고 하시자, 그는 굳이 오시지 않아도 말씀만 하시면 나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도 아랫사람에게 시키면 그들이 알아서 하는 것처럼 병을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시다면 분명 그분의 종들이 알아서 해 줄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것은 깊은 묵상으로 얻어진 믿음이기에 예수님은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우리도 마지막 때에 주님께 참믿음으로 살고 왔다는 칭찬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백인대장은 자신의 종을 위해 하느님의 대리자라 여기는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고 청할 줄 아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백인대장처럼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될까요? 우선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도 묵상했습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우선 우리 묵상이 ‘주님은 계신가, 계시지 않은가?’를 확정하는 방향이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계신 것을 믿는다고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이 계심을 믿어도 지옥 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계심을 믿는 사람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 걸음을 받쳐줄 믿음은 하느님의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성품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어떤’ 성품을 더 묵상하느냐에 따라 믿음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하느님의 성품을 묵상한다고 믿음이 다 증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흥행하는 ‘지옥’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서 어떤 사람이 몇 날 몇 시에 지옥에 갈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러면 괴물이 나타나서 그 사람을 지옥으로 데려갑니다. 
 
정진수라는 인물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일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죄에서 벗어날 것을 설파합니다.
‘새진리회’라는 종교단체까지 생겨나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커집니다. 
 
그를 이상하게 여기는 형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형사의 딸이 새진리회의 추종자입니다.
어머니를 살해한 사람이 정신이상 판정을 받아 10년밖에 살지 않고 출소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지옥을 만드신 분이 반드시 정의를 실현한다는 새진리회의 교리가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정진수란 인물도 사실 고지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 ‘나는 무슨 죄를 지었나?’를 되새기며 그 고지가 틀렸기만을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공포가 자신을 죄짓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것은 죽음의 공포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형사의 딸과 함께 범죄를 저지릅니다.
죗값을 다 치르지 못하고 나온 형사의 딸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을 함께 납치합니다.
그리고 지옥의 사자가 하는 것처럼 똑같이 그 사람을 불태웁니다.
어차피 지옥의 사자가 그런 정의를 집행하거나 자신들이 그런 정의를 집행하거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점점 더 세상은 지옥이 되어갑니다. 
이것을 통해 돈을 버는 새진리회, 그리고 자신이 고지받은 것을 알면 가족이 다칠까 봐 몰래 죽으려고 외딴곳으로 숨는 사람들, 또 그런 신의 계시를 방해하는 이들을 또 방해하는 세력들. 이렇게 세상은 정말 지옥이 되어간다는 내용이 지옥입니다.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는 이유는 하느님을 믿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정의에만 집중하고 묵상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느님의 자비보다 정의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무서운 분으로 믿었습니다.
하느님이 정의로우신 분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었다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도 믿음이 아니고 하느님을 무서운 분으로 믿는 것도 믿음이 아닙니다.
지옥에 있는 것들도 하느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렇다고 구원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무서운 분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백인대장은 하느님의 자비를 묵상한 사람입니다. 자신과 같이 유다인이 아니어도 좋은 것을 청한다면
반드시 들어줄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 한마디로 자기 종의 병이 낫게 하실 분임임을 알았습니다.
믿음은 자비가 곧 하느님이시고, 그 하느님은 전능하심을 믿은 것입니다. 
 
유튜브 ‘우와한 비디오’에 ‘반도의 유일한 1946년생 근육할아버지’란 제목의 비디오가 있습니다.
70이 다 되어가시는 근육 할아버지의 근육은 젊은 사람들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완벽합니다.
그만큼 큰 노력을 한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50년간 소싸움을 하는 직업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그 싸움에서 지고 나면 그 패배감을 술과 담배로 채우려 했습니다. 
그러다 건강 악화로 위, 장, 쓸개, 맹장 수술을 해야 했고
아내는 할아버지의 병수발과 함께 생계도 책임져야 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크게 깨달은 할아버지는 아내의 고생하는 모습에 자신도 땀 흘릴 수 있는 길을 택했습니다.
 
아내는 할아버지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고 할아버지의 근육을 보며 힘을 얻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의 부정적인 면을 묵상하고 정의로워지려고 하지만 이 두 부부는 서로서로 상대의 고생을 묵상한 것입니다. 
상대의 자비와 사랑을 묵상한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은 천국이 되었습니다. 
 
살다 보면 상대에게 서운하지 않은 것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가 긍정적인 것을 묵상하느냐, 부정적인 것을 묵상하느냐에 따라 믿음이 생기게도 하고 사라지게도 합니다. 
하느님의 정의도 우리는 자비를 묵상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상황이지 그것만을 묵상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밝은 면, 자비와 사랑을 묵상할 때만 커집니다. 
부정적인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어차피 내가 믿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것을 묵상하고 믿으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감소합니다.
믿음을 성장시키려면 항상 하느님의 긍정적인 속성을 묵상하여 더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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