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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11-02 조회수 : 1613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 나도 정화된다
 
연옥 영혼들을 기억하며 기도를 드리는 오늘은 우리도 그들과 같은 운명임을 자각하고 이 세상에서부터
연옥벌을 면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배가시킵니다.
연옥의 아주 짧은 고통도 이 세상에서 받아야 할 고통을 합친 것보다 크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방해하는 것이 내 자신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줄 모른다면 사랑에서 오는 참다운 위로를 얻어 누릴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매여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에서도 주님께서 나를 버리라고 강요하실 수 없으십니다.
‘나’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세상에서부터 나를 버리기로 한 사람은 불완전할지라도 천국에 들어올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입학했을 때 다른 초등학교에서 온 한 여자아이가 너무 예뻐서 청소하면서도 그 아이만 쳐다보았습니다.
용기 있는 친구가 그 여자아이와 사귀며 영화도 보고 왔다고 말할 때 그저 부럽기만 했습니다.
삼 년 동안 말 한 번 붙여보지 못하고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가면 더는 보지 못할 것 같아서 나름대로 용기를 내서 편지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만 써서 소문이 나면 안 될 것 같아서 여러 명의 여자아이에게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창피해 죽을 지경입니다.
물론 누구에게도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는 것을 자기들끼리는 정보교환을 한 모양입니다.
 
‘나’는 세상 것에 집착하면서 그것을 얻어내게 하지 못하는 ‘자존심’입니다.
그냥 사람을 지옥으로 향하게 만드는 뱀입니다. 
 
대학에서는 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화이트데이라고 해서 선물도 하고 나름대로 답장도 기다리는 설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만남을 이어갔지만, 행복이 ‘1’이라면 나머지 ‘9’는 그 사람에 대한 서운함과 잃을 것과 같은
걱정으로 지냈습니다.
한 사람을 사귀는 행복을 느끼기는 했지만 ‘1’을 위해 ‘9’의 희생을 해야 하는 이상한 행복이었습니다.
그래도 여러 명에게 편지를 해서 한 통도 답장을 못 받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그런 고통스러운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신학교에 들어와서는 그 집착이 사라졌을까요? 왠지 방학이 기다려졌습니다.
신학교에 머무는 삶이 전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가을을 탔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받는 고통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통은 남아 있었습니다.
집착이 바로 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연옥의 고통과 비슷하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집착을 완전히 끊고 죽지 못합니다.
그리고 주님도 우리 자유를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 끊음을 시작한 사람에게 정화의 시간을 줄 뿐입니다.
저도 신학교의 연옥 생활을 거치며 조금씩 사제가 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런 집착이 생기지 않아 참으로 자유롭고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와 이 연옥의 삶을 살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의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정화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도와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기도해주셨고 아버지는 믿어주셨습니다. 
 
제가 신학교 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크게 반대하셨습니다.
그러나 힘든 일을 나가셔야 함에도 밤새 한숨 못 주무시고 새벽에 들어와 “네가 선택한 대로 해라.”라고 하시며 저의 마음을 가볍게 해 주셨습니다.
 
부모님께서 바깥세상에서 믿어주시고 기도해주시는 것이 신학교에 있는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어떤 신학생들은 부모님이 걱정되어 중도에 포기하고 신학교를 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힘을 주시는 분들 덕분으로 어떤 신학생들은 정화의 과정이 빠르게 끝납니다.
이것이 연옥 영혼을 위해 우리가 기도해주어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영화 ‘브루클린’(2015)도 이와 같은 내용입니다. 브루클린은 미국 이민이 유럽의 하나의 흐름이 될 당시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었습니다.
 
에일리스는 못된 상점 주인 밑에서 얼마 안 되는 돈을 받고 미래도 없이 힘겹게 사는 청년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자신이 도와줄 테니 미국으로 건너오라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언니와 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것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차피 그들에게 짐만 되느니 희망의 땅 미국으로 건너가기로 합니다.
배를 탈 때부터 미국에서 직장에 다닐 때 모두가 낯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머니와 언니가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토니라는 미국인 남자가 다가옵니다.
토니는 배관공이었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에일리스가 만난 첫 아이리시가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토니 때문에 왠지 미국 땅에서 버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언니는 에일리스가 미국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자신의 병을 숨기고 동생을 보내준 것이었습니다.
에일리스가 뒤늦게 언니 무덤이라도 가보기 위해 한 달 동안 떠나가려고 합니다. 
토니는 자신과 결혼하고 가라고 합니다.
에일리스는 토니를 너무 사랑했기에 둘만 몰래 결혼하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고향이 좋습니다.
에일리스가 결혼한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의 미국식 스타일에 빠져듭니다.
그 동네 금수저인 짐도 그녀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타지에서의 고통스러운 삶에서 고향의 익숙함에 빠져버린 에일리스는 이제 짐을 좋아하며 토니의 편지도 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를 배 아파하던 이들에 의해 에일리스가 미국에서 결혼하고 왔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에일리스는 다시 눈을 뜹니다.
자신이 떠나가 된 이유.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돈이 최고이고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동네였습니다. 에일리스는 자유의 땅으로 다시 떠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눈에 밟힙니다.
어머니는 에일리스의 마음을 알고 그녀를 놓아줍니다.
당신은 혼자 있어도 되니 행복을 찾아 떠나라고.
그리고 에일리스는 이제 미국에 정착하려는 아이리시가 아닌 토니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완전한 아메리칸이 됩니다. 
 
천국에 정착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천국에 살고 싶다가도 이 세상의 집착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갈팡질팡합니다.
이것이 지옥의 고통과 별반 다름없는 연옥의 고통입니다.
이때 에일리스에게 힘을 준 이들은 언니와 어머니입니다.
그들의 희생이 아이리시 에일리스가 완전한 아메리칸 에일리스가 되게 해 줍니다.
 
천국으로 떠나 정착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완전한 행복을 주기 위한 이 세상에서의 기도와 희생은
분명 헛되지 않고 함께 천국으로 향하는 참사랑의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 아직 이 세상의 집착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여 지옥의 고통과 버금가는 고통을 겪고 있는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합시다.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는 것이 이미 내가 연옥의 정화과정을 통과하는 길입니다.
집착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자아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연옥의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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