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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2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10-26 조회수 : 180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전하려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비유로 설명해주십니다. 
우선 ‘겨자씨’와 같다고 하십니다.
겨자씨는 나무로 자라서 하늘의 새들이 깃들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늘의 새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선 ‘쉴 곳을 찾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겨자나무’는 그 사람을 맞아들이기 위해 내가 참아내야 하는 무엇일 것입니다.
그냥 그 사람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가 져야 하는 그 사람의 십자가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참사랑은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십자가를 내 심장에 박게 하는 것입니다. 
 
몬테팔코의 십자가 글라라 성녀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자신 안에 머물도록 초대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슬픈 얼굴로 걸어가시자 글라라 성녀는 어디로 가시느냐고 묻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요즘엔 내가 십자가를 꽂을 굳은 땅이 없구나!”라며 탄식하십니다.
그러자 성녀는 “제 심장에 당신의 십자가를 꽂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성녀의 심장에 당신의 십자가를 꽂습니다. 
 
성녀는 20대 초반에 탈혼 중에 돌아가시는데 그녀의 심장에서는 예수님 수난 도구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800년이 지난 지금도 썩지 않는 이 심장과 몸을 우리는 아직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이뤄진 사람은 이렇게 사람들이 그 사람 안에 십자가를 꽂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줍니다.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은 그 사람이 진 십자가를 꽂을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나로 가득 차 있다면 공간이 없어 누구도 쉬게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진리와 은총으로 우리를 십자가를 꽂을 굳은 땅으로 만드십니다. 
 
하지만 마음이 내 욕심으로 꽉 차 있다면 어떻게 십자가를 내어줄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래서 누룩이 필요한 것입니다.
누룩은 밀가루 서 말에 들어가 그 밀가루를 부풀게 합니다.
부풀게 만든다는 것은 그 안의 ‘공간’을 확장하게 시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신 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광야에서 세 유혹을 이기셔야 했습니다.
그 유혹은 돈과 육욕과 교만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힘으로 그것을 이기셨습니다.
그 결과 당신 안에 하느님과 이웃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과 쾌락의 마음, 그리고 이웃을 심판하고 불평하는 마음이 누가 들어올 공간을 주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렇듯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의 역할은 내 안에서 죄를 없애고 하느님과 이웃을 받아들일 공간이 생기게 합니다.
그러면 행복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CPBC에서 방영된 ‘향심기도, 제10강 관상’에서 김귀웅 신부님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분은 성탄 때 다문화 가정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고 신자들이 나와서 그 인간 구유에 경배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신자들은 처음에 ‘왜 우리가 사람에게 경배해?’라는 마음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탄의 참 의미를 알게 되자 모두가 나와서 한 어머니를 성모님처럼, 한 아기를 예수님처럼 경배를 하고 들어가더랍니다. 
 
만약 사람들 안에 여전히 ‘나는 다문화 가정 어머니와 아이를 성모님과 예수님처럼 똑같이 대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있다면 인간 구유를 경배하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와 은총의 누룩으로 그 사람의 마음 안에서 자아의 생각을 몰아내면 마음이 넓혀져 모든 이를
그리스도로 보게 됩니다.
 
사람은 다른 이들을 자신의 수준으로 봅니다.
본인이 모기면 이웃도 모기고 본인이 사람이면 이웃도 사람이며 본인이 그리스도이면 이웃도 그리스도입니다.
이렇게 영혼을 확장하는 것이 성령의 역할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넓힌 사람만이 겨자나무가 꽂힐 공간을 내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김귀웅 신부님은 예도 들어줍니다.
한춘희 님의 ‘파스카의 주인 – 시어머님’이란 글이었습니다.
간추려보면 내용이 이렇습니다. 
 
80세이신 시어머니가 서서히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시아주버님은 어머니를 치매 전문시설에 모시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모두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때 남편이 우리가 어머니를 모시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한춘희 님은 고3인 쌍둥이 아들들이 있었지만, 그 의견을 고민 끝에 받아들였습니다.
 
우선 소리 지르고 문을 두드리는 것 때문에 소음이 걱정되어 아파트 10층에서 1층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제일 큰 방을 어머니에게 드리고 가족들은 작은 방에 머물렀습니다.
며느리는 성당 활동에다 제과점을 운영하고 아이들 돌보며 어머님 식사는 끼니마다 새밥을 지어드렸습니다. 
 
어느 날 새벽 1시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도둑이라며 몽둥이로 내쫓으셨고 또 어느 날은 거실에 보따리를 여러 개 묶어놓고 빨리 한 개씩 들고 따라오라며 6.25 전쟁 당시 배를 타고 피난 온 것을 재현하곤 하였습니다.
그럴 때면 가족들은 어머님을 따라 보따리 하나씩 들고 아파트 단지를 몇 바퀴 돌고 난 후 어머니를 업고 들어와 주무시게 해 드렸습니다.
 
모두가 지치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고3 아이들에겐 더욱 그랬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받으시는 예수님이 바로 할머니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거야. 그러니 예수님으로 사랑해드리자.”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일은 기적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주위 시어머니를 모시기를 꺼리던 두 가정도 시어머니를 모셨고 의견을 나누며 힘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신자분들도 많이 도와주었고 신부님은
“여러분이 이 세상의 하느님 나라 증가자들이십니다.”라며 힘을 주었습니다.
 
봉성체 할 때면 어머니는 놀랄 만큼 맑은 정신으로 들어와 기도문을 외우셨습니다.
시누이들도 어머니를 뵈러 와서 어머님을 끌어안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갈 때는 고맙다며 냉장고를 가득 채워놓고 갔습니다.
어머니도 가끔 잠든 아들과 손자들의 이불을 덮어주고 방해가 될까 봐 거실에 혼자 나와계시곤 했습니다.
 
그렇게 3년 정도 고생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의 모든 일정을 다 마쳤을 때, 두 아들은 나중에 이 같은 상황이 오면 우리도 엄마 아빠처럼 할 것이라고 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어려움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무엇을 해 드린 것보다 받은 선물이 더 큰 것 같았습니다.
그 선물이란 바로 어머니가 모시고 오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파스카의 주인이셨습니다.
이것이 가정을 하느님 나라로 만드는 방식입니다.  
 
시어머니는 십자가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며느리 가족은 그 십자가를 꽂을 공간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 힘은 기도 생활에서 왔습니다.
시어머니를 그리스도로 보는 진리와 그 힘을 은총의 성사 안에서 채운 것입니다.
이는 마치 피로 문설주를 바르고 집을 죽은 어린 양에게 내어준 파스카와 같습니다.
피를 문설주에 발라 마음의 문을 열고 영혼을 넓히는 일이 누룩의 역할이고, 그 안에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십자가를 거부하지 말게 하는 일이 겨자씨가 하는 역할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가 된 사람은 모든 이 안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때문에 내 심장을 굳은 땅으로 내어줍니다.
이 역할이 누룩이 하는 것이고 그 누룩으로 공간을 내어줄 마음이 생긴 사람은 누군가의 십자가를
자기 심장에 꽂게 만들어 그 사람을 쉬게 합니다.
그곳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이 신비가 이뤄지면 곧 파스카의 실현입니다.
그 파스카를 실현하는 나라는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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