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깨어있는 종들!”
주인이 왔을 때 깨어있는 종이란 ‘언제나 주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종’을 의미합니다.
주인이 종에게 원하는 일은 이것입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주인이 ‘혼인 잔치’에 갔다가 돌아오면 허리에 ‘띠’를 매고 있어야 하고 ‘등불’을 켜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띠’가 무엇을 의미하고 ‘등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면 ‘깨어있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그렇습니다. ‘띠’는 ‘봉사할 자세’를 의미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받은 대로 해 주신다면 분명 우리가 한 대로 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등불’이란 ‘사랑과 봉사’를 의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당신이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그 뜻은 인간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랑의 ‘등불’을 들고 허리에 ‘띠’, 곧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십자가를 메시고 우리에게 봉사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매 순간 성령으로 사랑실천을 위해 나 자신을 포기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모든 불행에서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줄 힘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 등불을 들고 ‘실천’이라는 띠를 매고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합니다.
영화 ‘네이든’(2017)은 영국 수학 천재 소년 네이든의 유년기 실화를 담았습니다.
네이든은 자폐아입니다. 감정을 표출할 줄 모르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사회성이 뒤처집니다.
이 아이에게 아버지가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아버지는 네이든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해주고 아버지는 특별히 네이든이 수학에 눈을 뜨게 해 줍니다.
그런데 불행이 닥쳤습니다.
네이든과 함께 차를 몰고 가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네이든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주려 하지만 네이든은 마음의 문을 닫아갑니다.
어머니는 수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무엇을 사 오라고 할 때 항상 소수(1과 자신을 제외하고는 나눌 수 없는 수: 2, 3, 5, 7, 11, 13, 17, 19)로 사 오기를 원합니다.
엄마는 새우튀김을 사갈 때도 9개 준다는 것을 7개만 달라고 합니다.
그래도 항상 네이든에게 무식하단 취급을 받습니다.
어쩌면 네이든은 아버지가 죽은 원망을 어머니에게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네이든은 수학에만 더 몰두하였습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폐증 환자에게 능력까지 없다는 것은 그냥 모자란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네이든은 세계 수학 올림피아드 영국 대표 16명 예비 명단에 올라갑니다.
이 중에서 6명의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기 위해 대만에서 진행되는 2주간의 합숙 훈련에 참여합니다.
네이든은 처음으로 집을 떠나게 됩니다.
16명의 영국 아이들은 대만 아이들과 짝을 이루는데 네이든은 장메이라고 하는 여자애와 짝이 됩니다.
그러나 악수도 못 하고 어찌 대해야 할 줄 모릅니다. 장메이는 그냥 사랑 가득한 아이입니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활달하고 아무 표현도 못 하는 네이든과 잘 놀아줍니다.
새우튀김이 8개라고 주저할 때 그냥 하나를 집어먹어 7개를 만들어줍니다.
자신의 가장 어려운 고민을 간단하게 해결해주는 장메이에게 네이든은 평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낍니다.
다행히 둘은 각 나라 6등으로 나란히 올림피아드에 나갑니다.
시차 적응을 위해 하루 쉬는 날이 있었는데 장메이는 긴장을 했는지 네이든의 방에 찾아옵니다.
네이든은 좀 쉬다 가라고 합니다.
둘은 가벼운 뽀뽀를 하고 그냥 잠이 듭니다.
그러나 대만 지도자가 아침에 갑자기 들어왔고 장메이는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됩니다.
네이든은 시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인터넷에서 보았던 사랑의 공식만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시험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갑니다.
응원하러 왔던 엄마는 깜짝 놀랍니다.
네이든은 아버지가 왜 돌아가셔야 했느냐며 웁니다.
그런 아이를 엄마는 안아줍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고는 장메이를 만나러 역에 가자고 데려다줍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띠를 매고 등불을 들어주기만을 기다린 예수님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먼저 띠를 매고 등불을 들고 있습니다. 네이든은 사고 이후 처음으로 앞 좌석에 탑니다.
그렇게 둘은 다시 만나게 됩니다.
실제 이름 ‘다니엘 라이트 윙’은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네이든에 의해 7등으로 아쉽게 떨어진 한 아이가 화장실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너도 자폐증 진단받았지? 난 특별한 재능이 있으니까 이상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근데 특별하지 않다면 그냥 이상한 거야!”
이것이 깨어있지 못함입니다.
빛이 없는 것입니다.
특별함이 사랑이 아닌 다른 무엇, 곧 수학이나 돈, 재능, 명예 등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잡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어있지 못함입니다.
비록 그것을 위해 자신을 바칠 용기가 있어도 그것이 등불이 아니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은 종교를 통해서도 특별해지려 했습니다.
종교가 아닌 사랑으로 특별해지려 해야 합니다.
그럴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합니다.
네이든의 아빠처럼 자녀들에게 특별해질 수 있다는 띠를 매어주고 네이든의 엄마처럼 다른 거 다 포기해도
사랑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불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그리스도처럼 사랑할 수 있는 지혜를 줍시다.
이것이 자녀를 행복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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