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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10-07 조회수 : 1142

오늘 복음은 어제 ‘주님의 기도’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임이 증명되고 자녀로서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을 받는 특권까지 누립니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에서 청원하는 내용에 집중해야지 그것을 통해 얻으려는 것에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일단 부모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녀도 원할 때 무언가 더 주고 싶어집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무언가 자신에게 꾸준히 청할 때 자녀가 자신을 신뢰한다는 사실에 기뻐합니다.
그러면 무엇이든 들어주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무언가를 꾸준히 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꾸준히 청하는 것은 약간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이기에 꾸준히 청할 수 있으려면 상대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굉장해야 합니다.
따라서 꾸준히 청한다는 것은 이미 그만큼 하느님을 신뢰하고 있음을 증명하기에 하느님은 그런 자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실 수 없으십니다. 
 
평생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하는 ‘조지 뮬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기도 노트에는 기도 제목들이 3천 페이지나 넘게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도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했지만,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우정을 나누었던 5명의 친구 구원 문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섯 명의 친구를 위해 계속 기도했습니다. 한 사람씩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안 믿는 친구가 두 사람 있었습니다.
조지 뮬러는 이 두 친구를 위해서 무려 52년간 기도했지만,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조지 뮬러는 노년이 되어서 자기 인생의 마지막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날 조지 뮬러의 안 믿던 한 친구가 그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나머지 한 친구는 안 믿었습니다.
결국, 조지 뮬러는 마지막 기도 제목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에 그때까지 안 믿고 있었던 한 친구가 뮬러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조지 뮬러가 자기를 위해서 52년간이나 기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지 뮬러가 죽은 바로 그해 그 소식을 들은 이 친구는 결국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믿고 나서 그 친구는 전 영국 땅을 순회하면서 “조지 뮬러 목사의 기도는 다 응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최후의 응답입니다. 당신의 모든 기도는 다 응답합니다.”라고 간증하였습니다. 
 
만약 두 아이가 무언가 청하는데 한 아이는 그저 ‘찔러보는 식으로’ 이것 청했다가 저것 청했다고 하고,
또 한 아이는 하나가 이루어질 때까지 ‘끈질기게’ 청한다고 할 때 누구의 청을 먼저 들어주시겠습니까?
자신께 신뢰심을 보이는 아이일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청하면 그분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믿음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야 멈추지 않고 끈질기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신뢰심은 기도의 ‘꾸준함’으로 증명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친구들이 한 명, 한 명 회개하였다는 것입니다.
내가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한 번만 청해도 다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믿음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기가 두 발로 걷기 위해 수천 번 넘어지는 시도를 하는 것처럼 꾸준히 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변화를 느끼며 믿음이 함께 성장합니다. 아기들도 걸음마를 할 때 매번 똑같이 넘어지지 않습니다.
조금씩 발전합니다.
그렇게 믿음이 더해져 포기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험악한 얼굴에 인간미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성격까지 괴팍하였습니다.
얼굴과 성격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활도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방탕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항상 문제만 일으켰습니다. 그는 누가 봐도 구제불능이었습니다.
그가 왜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에 받은 부모의 학대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학창 시절에 당한 왕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원래가 이렇게 못돼먹은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엉터리 같은 남자의 마음에 사랑의 온정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게 된 아름답고 순결한 아가씨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할 수 있는 온갖 사랑의 말로 고백했고 청혼도 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온갖 진심을 보여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거절뿐이었습니다.
 
“그 마음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당신같이 험악하게 생긴 사람의 아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참 매몰찬 거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무도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가면을 이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비싼 값을 치른 후 인자하게 생긴 얼굴의 가면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가면을 쓰고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고, 청혼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여인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달콤한 사랑의 말과 가면의 인자한 모습에 감동한 것입니다.
남자는 결국 결혼을 허락받을 수 있었습니다.
 
원래 선량함이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던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원하던 여인을 신부로 얻게 되자 그는 달라졌습니다.
그는 사랑스러운 신부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 손님은 이 남자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남자가 잠든 사이 그는 여자에게 진실을 말하였습니다. 가면 속에 감춰진 남편의 험악한 얼굴과 방탕한 과거의 추한 모습들을 낱낱이 폭로했습니다. 
그것은 아내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진실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잠든 남편의 가면을 슬그머니 벗겨보았습니다.
순간 남편의 과거를 폭로했던 손님이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습니다.
가면 속의 얼굴은 과거 그가 보았던 험악하고 비열한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살며시 미소 머금은 얼굴로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그 표정은, 오히려 그가 쓴 가면의 얼굴보다 더 인자하고
푸근하게 변해있었습니다.
 
끈질기게 기도하면 좋은 점이 무엇이냐면 그러면서 “믿어진다.”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좋으신 분임이 믿어지고 그래서 내가 청하는 것을 꼭 들어주실 것이 믿어집니다.
그렇게 나 자신도 더욱 믿음이 강한 사람으로 자신도 모르게 변합니다.  
 
저는 ‘일곱 번의 주님의 기도’를 1997년 신학교 입학하는 해 1월 1일부터 계속 바쳐오고 있습니다.
연옥에 가지 않고 순교자의 지위에 올려주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처음에 이 기도를 바칠 때 마음 한구석에서는 ‘설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가고 10년이 지나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는데?’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이 기도를 바치며 자신이 조금씩 변화됨을 스스로 체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완전한 믿음을 지니지 못합니다. 그랬다면 지금 물 위를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더라도 자꾸 바치다 보면 주님의 기도에서처럼 조금씩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믿어지게 되고 믿어지면 못 할 게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청하는 것은 다 들어주실 것을 확고하게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기도 내용을 깊이 묵상하며 꾸준하게 바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젖을 줄 때까지 계속 ‘엄마!’를 외치지 않는 아기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외칠 때마다 젖을 주는 엄마를 보면 아이는  엄마임을 더욱 확실히 믿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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