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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6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10-06 조회수 : 788

어떤 지식인이 가톨릭에 입교했습니다. 그의 입교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친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가톨릭 안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지 않나? 이렇게 문제가 많은데 왜 가톨릭에 입문했는가?”

그러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 역시 가톨릭에 너무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교회 초창기 때부터 계속 있었지. 그런데도 계속 존속해 오는 것을 보면 이 안에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네.”

교회 안에 무능함과 한계는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시작해서 계속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종종 교회 안의 문제를 바라보면서 교회 나가지 않는 이유를 말씀하시는 분을 만납니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2,000년 이상 계속되고 있었으니까요. 교회 안의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의 주님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엄청난 특권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제자들에게 직접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그런데 당시의 사람들이 하던 기도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즉,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 역시 기도를 통해 당신과 하느님의 관계와 똑같은 관계에 들게 하시는 것입니다. 엄청난 특권이 아닙니까? 예수님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되었는데 이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교회 안에서 특권을 받습니다. 그러나 조건 없는 특권만 주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커다란 책임도 동시에 주어집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 마지막에 ‘용서’에 대해 말씀을 하시지요.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차마 내치지 못하시는 동정이 담긴 사랑을 가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향해서도 동정이 담긴 사랑으로 모든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용서를 받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희에게 잘못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루카 11,4)

다른 이들을 용서해주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지속되는 한 늘 되풀이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특권만이 아닌 책임도 주어지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어떻게 내 이웃에게 전달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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