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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6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8-06 조회수 : 1676

고등학교 다닐 때, 무엇 하나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아침 7시 30분까지 등교하고, 밤 10시에 귀가하는 일과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과목을 공부하는 것이 아닌, 학교에서 가르치는 공부를 무조건 해야만 했습니다. 두발, 복장도 제 맘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 것 같았습니다.

지금 저를 보면 누구나 어른이라고 부릅니다. 막 성인이 되었을 때는 주점에서 신분증 검사를 요청하면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 제게 신분증 검사를 하겠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고 싶은 어른으로 살고 있지만, 이 어른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자주 느낍니다.

학창 시절의 규제가 오히려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그만큼 보호받고 싶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보호받고 있음이 얼마나 커다란 안정을 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른의 무게가 참 무겁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사실이 있습니다. 세상은 어른이라고 보호해주지 않으려 하지만, 주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더 열심히 살 힘을 얻게 됩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인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신 뒤에,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십니다. 사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모습이 변하다’라는 동사가 종종 쓰이는데, 모두 영적인 변모를 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변모는 영적인 변모가 실제적으로 눈에 보이는 변모입니다. 그 뒤에 나오는 눈부시게 빛나는 옷은 천상 영광의 표징 가운데 하나로 주님의 부활이 단순히 영적인 것이 아님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와 엘리야와 모세가 함께 있는 자리라 얼마나 영광스럽게 생각되었을까요? 베드로가 나서서 그 자리에 그냥 눌러살자는 자신의 의견을 말합니다. 바로 그 순간 구름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들려오지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주님의 보호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보호 아래에서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면서 편안함과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부활 사건 이후 주님의 뜻을 따르며 주님의 보호 아래 사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줍니다. 열정적으로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고, 어떤 박해의 위협에서도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기쁨과 희망을 간직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도 거룩하게 변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보호 아래에 있지 않으면 거룩하게 변할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도움이 될 것은 꼭 있습니다.

‘관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관심 종자, 관심 병자라고도 불립니다. 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병적인 수준에 이른 상태를 말합니다. 이들은 타인에게 관심을 받으려고 게시판에 글을 작성하고, 댓글을 달며, 이목을 끌만한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종’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관종이 되면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분위기를 이끕니다. 그러나 정말로 잘못된 것일까요?

나대는 것도 그의 고유한 성격일 수도 있으므로, 이를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주목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관종의 삶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책임감이 없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나대고 주목받으려는 나의 말과 행동에 책임질 수 있다면, 나름대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낮출 수 있다면 가장 큰 가치를 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관종을 무조건 나쁘다 생각하지 마시고, 좋은 가치로 변화시켜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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