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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3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7-31 조회수 : 2277

7월31일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마태오 14,1-12
 
‘나쁜 사람’ 안 되는 법: 사랑은 ‘나’를 포기하게 만든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 왕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자기가 죽인 헤로데가 되살아난 것이라 여깁니다. 
두려움에 머리가 이상해진 것입니다. 
그는 동생의 아내와 살기 위해 그것을 비판하는 요한을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중이 두려워 죽이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잘 추자 그녀의 뜻대로 요한을 처형하였습니다. 
 
헤로데는 왕이면서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생각을 하고 군중과 가족들에게 휘둘립니다. 
그리고 결국 예언자를 죽이는 나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 자신의 주인공으로 살다가는 나뿐인 사람, 곧 나쁜 사람이 됩니다. 나뿐인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주인공으로 삽시다.’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남에게 휘둘리지 말고 자기 주관대로 살자는 말입니다. 
책 제목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나』,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산다는 것』, 『잊지마,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걸』 등의 제목으로 책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나’로 산다는 것의 깊은 의미를 성찰하지 못한 말들입니다. 
 
헤로데도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노예가 되어버렸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나의 주인공이 되어 살려는 사람들의 결과입니다. 
‘나’라는 말은 나의 정체성과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사귈 사람을 규정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화 ‘트와일라잇’은 ‘벨라’란 한 인간 여인을 사랑한 뱀파이어 ‘에드워드’와 늑대인간 ‘제이콥’ 사이의 이야기입니다. 
현실에서는 말도 안 되는 판타지 영화이지만 ‘나’라는 정체성이 어느 세계에 속하게 만들고 누구와 사귀게 되느냐를 말해주는 좋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벨라가 뱀파이어 에드워드와 사랑에 빠집니다. 뱀파이어지만 착한 뱀파이어입니다.
동물들의 피만 먹고 사람의 피는 먹지 않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로 작정한 몇 안 되는 뱀파이어 가족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벨라 옆에는 사람의 피를 먹는 뱀파이어들도 득실댑니다.
자신을 사랑하다가는 그녀의 목숨이 위태로운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를 위해 그녀를 떠납니다. 
 
이때 늑대 인간 제이콥이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녀는 뱀파이어가 아닌 한 보통 인간을 사랑하고 싶어
조금씩 그에게 의지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처음에 사랑했던 뱀파이어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제이콥은 벨라가 걱정돼 전화를 건 에드워드에게 벨라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에드워드는 살 의욕을 잃고 햇빛에 자신을 노출시켜 자살하려 합니다.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벨라는 자살하려는 에드워드를 구해주고 자신도 뱀파이어가 되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에드워드는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뱀파이어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인지 알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인간들 안에서 숨어서 살며 인간을 해치지 않으며 모든 위협을 참아내며 살아가야 하는 뱀파이어의 삶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벨라도 이것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이 너무 강렬했기에 뱀파이어는 그녀를 뱀파이어로 만듭니다. 
 
여기서 ‘나’는 늑대, 인간, 뱀파이어로 나뉩니다. 그리고 뱀파이어도 좋은 뱀파이어와 나쁜 뱀파이어로 나뉩니다. 
이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은 ‘나’라는 정체성입니다. 
 
내가 뱀파이어를 사랑하고 뱀파이어의 세상에서 뱀파이어를 사랑하려면 ‘나’가 뱀파이어가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에드워드는 뱀파이어지만 인간을 사랑하는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인간은 뱀파이어가 되기 위해 인간의 삶을 포기합니다. 
 
헤로데는 이 세상에 살며 이 세상 사람들과의 친교를 위해 예언자 요한을 죽였습니다.
나를 바꾸지 않기 위해 나를 바꾸기를 원하는 이를 죽인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믿는 ‘나’가 ‘사람’이라는 인간들이 세상에 속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이 친교를 넘어서는 더 높은 수준의 친교가 있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새장이나 어항에 머물며 그 안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것이 아닌 바다와 창공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고 그들과 친교를 나눌 수 있음을 예언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로워지는 길은 나를 이 세상에 가둬놓는 ‘나’라는 정체성을 더 큰 ‘나’와 교환하는 것입니다.
벨라가 인간이라는 협소한 세상을 벗어나 영원히 죽지 않는 뱀파이어의 사랑을 하기를 원해 한 일은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녀는 이제 “나는 뱀파이어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상대를 위해 ‘나’를 내어주어 교환하는 행위입니다. 
 
나뿐인 사람은 나를 지키기 위해 누구와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타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이는 나쁜 사람이 됩니다. 
 
인간인 ‘나’를 포기하고 ‘나는 나다!’라고 하시는 그리스도를 ‘나’로 삼으면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의 법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나’로 살면 나를 살리기 위해 ‘나’가 속은 세상의 법칙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노예가 됩니다. 
헤로데처럼 괜히 삶의 주체가 ‘나’가 됨으로써 세상의 노예이면서도 자기가 왕이라고 착각하며 세상의 노예로 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겐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른다는 말은 우리 전 존재의 정체성이 이제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하느님 자녀들이라 믿는다는 뜻입니다.
“나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세상에 속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위선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른다면 나도 그리스도요 하느님께 속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나뿐인 사람, 곧 나쁜 사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나’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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