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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3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7-30 조회수 : 2147

믿음 대신 챙기는 자존심, 그 가치는 얼마일까?
 
오늘 복음은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여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복음 내용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에 관해 증언하는 것을 무시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이 말씀대로라면 기적은 믿음이 있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일단 믿고 기도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 기적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자렛 사람들은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닫고 믿어보려고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적이나 해 보라는 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번 믿어보려는 열린 마음, 이것이 구원의 첫걸음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믿음’ 대신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자존심’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믿었는데 소문대로 예수님께서 사기꾼으로 드러나게 되면 사기꾼을 메시아로 여긴 자신들의 자존심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지만 자존심이 얼마나 가치가 큰 것이기에 영원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모험까지 감행하며 지키는 것일까요?
 
어떤 무신론자인 기자가 봉쇄 수도원에 와서 원장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봉쇄 수도원에서 밖에도 못 나가고 고생만 하는 것 같은 수도자들을 안쓰럽게 여기며 원장에서 말했습니다. 
 
“만약 죽었는데 하느님이 없다면 여러분들이 하는 고생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수도원 원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행복해서 여기 있는 것입니다.
믿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억지로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밖에서 사는 것보다 더 좋아서 여기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 이후에 하느님이 없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때 하느님이 계신다면 진짜 놀랄 사람은 당신일 것입니다.”
 
무신론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모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 고귀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정말 자존심의 가치는 얼마일까요?
 
영화 ‘친구’에서 보면 자신이 친구를 죽이지 않았음에도 건달이 건달다워야 한다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무기징역을 선택합니다.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무기징역을 선택합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은 아무리 계산해도 이 세상에서 주님을 믿고 사는 것이 훨씬 더 이익임을 밝혀냈습니다.
이 세상에서 믿고 사는데도 별 지장이 없지만, 만약 믿는 분이 계실 때는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이고 믿은 사람은 천국이 됩니다. 
 
쉽게 이해하자면 이렇습니다.
한 사람이 차도를 건너려고 하는데 하도 차가 쌩쌩 다녀서 무단횡단을 하다가는 사고 날 확률이 50%나 됩니다.
그러나 무단횡단을 하면 10초면 끝나지만, 육교로 건너면 10분은 걸립니다.
여러분은 무단횡단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육교를 선택하시겠습니까?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존재하실 확률은 50%입니다.
그러나 지옥 갈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존심을 세우며 믿지 않으려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일까요?
도대체 우리가 목숨까지 내걸며 지키려는 자존심의 값은 얼마일까요?
 
항우라는 사나이는 초나라의 명장이었습니다. 그는 7년 동안 70여 차례의 전투를 벌여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군을 몰고 오는 한나라의 유방에겐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수십 명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강에 도착합니다.
배를 준비하고 있던 부하가 말합니다. 
“어서 강을 건너십시오.
강동 땅이 비록 좁다지만, 땅이 사방 천 리나 되며 백성은 수십만입니다.
그곳도 왕 노릇 하기에는 충분합니다.”
 
항우는 껄껄 웃으며 말합니다. 
“나는 강동의 8천여 장정들을 데리고 강을 건너왔는데, 지금은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설령 강동의 백성들이 나를 왕으로 추대할지라도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보겠는가?”
 
항우의 이런 콧대 높은 자존심은 일생에 단 한 번의 패배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습니다.
70전 1패의 1패가 그를 죽음으로 몰았고, 유방은 맨날 패하다 이 1승으로 한나라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때 항우의 오른팔이 ‘한신’이란 장수였습니다.
한신은 가난한 천민 출신이라 지방 불량배 가랑이로 기어 다녀야 했습니다.
물론 실력이 안 되어서가 아니라 지금 살인을 저지르면 그의 꿈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본 구경꾼들의 조롱은 대단했습니다.
한때 귀족 출신인 항우에게 갔지만, 천민 출신인 자신을 무시하는 바람에 유방에게 갔던 것이고 결국 자신이 모셨던 전쟁의 신과 같은 사람이 자결하게 만드는 장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항우의 나이는 31세였습니다. 
 
자존심 내려놓고 일단 한 번 믿어서 속으면 어떻습니까? 왜 자존심을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길까요?
그러면 우리가 영원한 생명까지 걸고 지키려는 자존심의 가치는 얼마일까요?
가치는 누가 그것을 알아주고 사줘야 정해지는 것입니다.
금도 너무 흔해서 사주지 않는다면 그냥 돌에 불과합니다.
나의 자존심은 다른 사람에게 얼마에 팔 수 있을까요? 아무도 안 사줍니다.
자존심을 지켰다고 아무도 안 알아줍니다.
왜냐하면, 각자의 자존심은 각자의 뱀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 자아를 귀하게 여겨 사주겠습니까? 혼자만 귀하다 여기는 것입니다.
빵 하나를 가진 거지에게 100만 원 수표를 주려고 하는데 그 빵을 놓지 못해서 그 수표를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아가 자존심이 귀한 것으로 믿게 하여 이런 일을 벌이는 것입니다. 
 
저도 어머니와 찜질방에서 누가 늦게 나가는지 시합을 해 보았습니다.
힘든데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더 오래 있으려 하는 것은, 주님께 무릎을 꿇느니 지옥을 선택하려는 자세와 같습니다.
자존심을 쓰레기로 여기십시오.
이것이 결국 믿지도 못하게 만들고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자존심이 쓰레기가 될수록 자존감은 더 높아집니다.
그래도 되는 존재가 되게 해주시는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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