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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5일 -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7-05 조회수 : 2275

편안으로 평안을 잃을 것인가?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거행합니다. 
만약 천국이 없다면 김대건 신부님의 일생은 그냥 고통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릴 적 마카오로 가며 수 없는 육체적 고생을 했고 공부하면서 정신적으로 더욱 그러했으며 부모와 가족의 순교로 마음고생도 이에 못지않았습니다. 
사제로 서품되어 조금은 편안하게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겠지만, 순교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가 다 아는 바대로 김대건 신부님은 높은 벼슬과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주겠다는 회유를 뿌리치고
순교의 길을 택합니다.
한순간도 편안해 본 적이 없는 삶이었지만 마지막까지 편안함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은 힘들기만 하셨을까요?
마지막에 조금도 편안하기를 원치 않으셨다면 사실 그동안 충분히 행복했던 것은 아닐까요?
하루의 마지막도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안했을 때 잠이 잘 오는 것이 아닐까요?
종일 쉬고 놀고 방탕하게 살았다면 오히려 불안해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편한 일과 힘든 일, 두 개가 앞에 놓여 있다면 항상 좁고 험하고 힘든 일을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사실 편할 때 더 고통스럽습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행복해하십니다.
그 이유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편안할 수 없습니다.
상대를 위해 피를 흘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박해받는 시기에 더 신앙이 강해집니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는 지금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먼 나라 이야기를 넘어서서
‘왜 그 고생하며 신앙생활을 한 거야?’라며 의아해합니다.
고통의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도 가톨릭 국가로서 영국의 심한 박해를 450여 년 받으면서도 신앙을 잘 지켰지만, 소득이 높아지며 편안해진 지금은 다른 유럽 국가와 별반 차이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낙태법도 허용되었고 젊은이들은 성당을 떠났습니다. 삶도 신앙도 편안해지려고 하면 죽습니다. 
 
‘쓰레기로 2층까지 꽉 찬 트레시 홈’이라는 유튜브 동영상이 있습니다. 
주택가 한가운데 이층집 천장까지 쓰레기로 꽉 찬 이 모습은 실제로 보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집주인은 왜 쓰레기를 모으는 것일까요? 모두 다 필요하다 생각하니 모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모든 이상한 행위 뒤에는 항상 ‘죄책감’이란 것이 있습니다. 
집주인의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여 아들이 원하는 것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쓰레기를 치울 때 아들은 필요한 것들인데 왜 치우느냐고 짜증 섞인 말까지 합니다. 
 
아버지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고생하면서 성장하게 창조되었습니다.
때가 되었으면 밖으로 떠밀고 혼자 힘으로 고생하며 살아가도록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부모가 해야 할 자녀에 대한 의무일 것입니다.
세상에 왜 이런 고통이 있느냐고 말하지만, 고통 없이는 어떠한 성장도 있을 수 없습니다. 
 
‘양팔은 잃었지만 삶은 잃지 않았다’라는 유튜브 동영상이 있습니다. 
전기 감전 사고로 양팔을 잃은 분이 계십니다.
자신이 만든 의수로 자신이 만든 자전거에 폐지를 싣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하루를 열심히 일해도 버는 돈은 5천 원 이하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표정은 매우 밝습니다.
집에만 있으라는 말을 뒤로하고 뭐라도 하고 있다는 보람 때문입니다. 
 
그분을 보며 주위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합니다. 이분은 말합니다. 
“난 팔을 잃었지 의지까지 잃은 것은 아닙니다.”
 
따님도 이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같이 다닙니다. 덧글로 달린 몇 개의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팔 두 손 멀쩡하여 지금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는 이 두 팔 두 손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힘들다고 엄살떨고 있는 나를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존경합니다.”(Eugene Johns)
 
“땀 흘려 번 돈 4800원에 저렇게 환히 웃을 수도 있는 모습이 새삼 날 부끄럽게 한다.”(미또)
 
“아저씨는 대기업의 CEO보다, 빌 게이츠보다 이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한 어떤 사람보다 위대한 사람입니다.
죄송하고요 감사합니다.”(한휴머)
 
이분이 인터뷰하실 때 뒤에 성모상이 보였는데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이런 분이 현시대의 김대건 신부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우주선에서 오랜 시간 있으면 건강이 좋을까요? 그곳은 기압이 낮아서 몸을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육이 약해지고 골밀도도 약해져서 우주에서 너무 오래 머물면 몸이 망가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힘들지만, 땅을 딛고 살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야 근육도 생기고 뼈도 튼튼해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약해집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제일 힘드셨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편안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편안함과 싸워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강하게 되시었습니다. 
 
편안함에 물들지 맙시다.
마치 개구리가 들어있는 물을 조금씩 가열하면 개구리는 뜨거워지는지도 모르고 죽는 것처럼 편안함은 우리를 알지도 못하게 죽입니다.
자꾸 몸을 불편하게 해야 하고 운동해야 합니다. 
 
신앙도 고난 속에서 더 성장합니다. 하늘에서는 이 세상에서 성장시킨 신앙만큼 상을 받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님이나 다른 순교자들을 안됐다고 보지 말고 부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6개월간의 긴 여정 끝에 마카오에 도착해서 세 명의 조선 신학생이 놀랐던 것은 건물이나 전례의 완벽함이 아니었습니다.
‘자유’롭게 미사에 참례할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만약 지금 교회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면 우리 사회 분위기가 편안함을 선택하여 죽어가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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