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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6-12 조회수 : 2846

성모 성심 : 다 봉헌하고도 죄송한 마음 
 
어제는 사제 성화의 날이기도 하면서 예수 성심 대축일이었습니다. 
사제는 아버지의 마음과 어머니의 마음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다 내어주시고도 미안한 아버지의 마음’을 지니셨습니다. 
그러면 성모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다 봉헌하고도 죄송한 마음’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성전에 계시며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하신 말씀을 듣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분명 봉헌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이제 아버지의 소유임을 잠깐은 망각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십자가 밑에서까지 예수님을 따라가시며 아버지의 뜻에 봉헌하십니다.
그러나 완전히 봉헌하지 못하고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라고 하시며 어머니로서의 아주 미소한 집착을 내비치셨습니다. 
 
부모를 잃은 자녀를 고아라 하고, 남편을 잃은 여인을 과부라 하며, 아내를 잃은 남자를 홀아비라 하는데,
자녀를 잃은 부모는 너무 슬퍼서 부르는 이름조차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잃어본 사람만 알 것입니다.
 
그러나 맡기셨던 것을 다시 찾아가시는 것에 불과한 일이 그런 고통을 가지는 것조차 죄스러운 마음이 성모 마리아의 마음이 아니셨을까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더 못 줘서 미안하고
어머니는 남편에게 더 못 돌려드려서 죄송한 마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수녀님께서 감사하게도 당신이 수녀가 되게 된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허락은 받았지만, 누구신지 짐작이 갈 것 같은 내용은 조금 수정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 봉헌하면서도 죄송하고, 그래서 행복한 성모님의 마음과 닮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심하게 자아와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방황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대학교를 철학과로 들어갔는데 3학년 때 또다시 제 영혼이 ‘삶이란 무엇인가?’의 딜레마에 빠져 방황하였어요. 
 
그러던 중 형이상학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저에게 철학 공부를 해보라고 하셨고 저의 정신적 멘토가 되어주셨어요. 
그런데  교수님께서 급성 간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교수님은 어떤 신부님과 친구셔서 신부님께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대세를 받고 선종하셨어요. 
그때 성당에서 하는 미사라는 것에 처음 참석했죠'.
 
교수님께서 마지막에 돌아가시기 전 제게 하신 말씀은 “내가 사제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였습니다.
그러시며 저에게 『천국의 열쇠』를 읽어 보라고 하셨죠
(‘천국의 열쇠’는 헌신적으로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종교의 굴레보다는 사랑의 실천을 목적으로 살았던
치셤 신부와 고위 성직자가 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안셀름 주교의 두 삶이 대비되면서 하늘 나라는 누구의 것인가를 묻는 내용입니다). 
 
교수님의 죽음으로 저는 또 길을 잃고 죽음에 대한 사유로 가득했습니다.
도대체 진리란 무엇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휩싸여 캠퍼스를 돌며 도서관에서 수많은 철학자가 제시하는 해답을 읽으면서 방황했어요. 
 
『천국의 열쇠』 책을 사러 가톨릭 서점을 다니면서 신학과 신앙 책을 읽게 되었고 제 영혼을 가장 강력하게 붙잡아주는 말씀이 저를 교회로 이끌었어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그 후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교리 반을 다니면서도 자살 충동이 계속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 심했지 않았을까?’, 아니면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원했던 대학원 진학도 할 수 없었어요.
다만 성모님 기적 메달, 묵주, 성수 등에 매달리며 예비자 때도 매일 성당에 갔어요.
성체만 영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빨리 세례받기만을 기다렸죠. 
 
그리고 길이 없는 저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길이다.
진리를 찾는 저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진리다.
죽음으로 가득한 저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생명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제 영혼을 구원해 주셨어요.
 
세례받고 제가 엄청나게 밝아 졌어요.
자연스럽게 신앙 서적과 성경을 읽으면서 마더 데레사 수녀님처럼 수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수님을 만나니 나에게서 철학은 끝났다고 정리했어요. 
마더 데레사 수녀님처럼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지 저 자신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서 수녀원 입회 전에 가톨릭 장애인 시설에서 숙식하면서 일했는데 매일 매우 피곤했음에도 그때 성당에 가서 밤에 2시간 정도 성체조배를 했어요.
 
그때 예수님 환시 체험을 했어요.
십자가에 계시는 예수님이 살아서 몸을 비틀거리면서 너무 고통스러워하셨어요.
이런 환시는 수많은 날 오랫동안 계속되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혼자서 2시간 “예수님 사랑해요.”라고 기도하면서 그 고통스러운 예수님 바라보다가 성당에서 졸기도, 잠들기도 하고, 나중에는 예수님께 “예수님 죄송해요. 저 너무 피곤해서 갈게요.”
그러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살아 움직이며 몸을 비틀면서 못 박힌 손과 발, 계속 힘들어하시는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숨소리를 들으며 나와야 했어요.
 
고통스러워하시는 예수님을 홀로 남겨두고 성당에서 나오는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웠어요.
이 환시 체험은 계속되다가 종신서원 후에는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때 그 시설에 신학생 2명이 파견받아 봉사하고 있었는데 두 명 모두 저에게 결혼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농담이든 진담이든 저는 밤마다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이루고 있었기에 수녀원 갈 것이고 결혼할 마음이 없다고 말했어요.
 
저를 사랑하기에 받으시는 예수님의 고통에 저 자신을 바치는 것도 부족하다 여겼기 때문에 당연히 그 멋진 신학생들에게는 마음이 갈 수 없었어요.
지금도 저는 너무 행복하고 예수님 성체를 매일 모시면 너무 흡족하고 바랄 것이 없는데 성당에서 조배하고 예수님과 함께 하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만족스러운데
천국에 가면 얼마나 행복할까요...아멘."
 
저는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제가 버리고 온 것에 비해 주님께서 저에게 왜 더 주시지 않느냐고 불평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예수님의 한 마디로 오히려 죄송스러운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이렇듯 주님께 당신 자신을 다 봉헌하여 구원자의 어머니가 되셨음에도 주님의 은혜에 다 보답할 수 없는 마음에 미안하셨을 것입니다. 
 
수녀님이 삶의 길과 참 진리와 생명을 찾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것을 주신 것에 비해 당신은 그분의 곁을 떠나있는 것에 너무나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졌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내가 가진 것, 나의 사랑스러운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을 주님께 바친다고 주님께서 주신 것보다 더 바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내가 바친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십일조가 아니라 당신의 온 존재와 당신의 아드님을 바치시고도 항상 죄송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미안함과 인간의 이 미안한 마음이 합쳐질 때
둘은 하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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