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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5-11 조회수 : 2584

끝까지 가려면 내가 나에게 놀라는 삶을 살아라


오늘 복음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 결말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을 통해 오시는 ‘성령’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 즉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면 버려진 가지처럼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됩니다.


그런데 성령의 열매로 살 때 일어나는 일은 ‘세상의 박해’입니다.

박해받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박해와 미움을 받습니다. 빛과 어둠은 물과 기름처럼 합쳐질 수 없는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용기를 잃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이유도 역시 ‘성령’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6-27)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아무 이유 없이 미움을 받을 때 실망하고 절망하여 포기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6,1)라고 하십니다.


저도 작년과 비교하면 세상적으로 봤을때 인기가 많이 생긴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유튜브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인기 때문에 유튜브를 한다, 돈 때문에 한다, 명예욕이 너무 강하다, 업적 주의다,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한다 등 많은 비판이 쏟아집니다.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됐으니 유튜브를 그만두라는 말까지 합니다. 물론 제가 교만해질까 걱정되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의해 저지당하기 전까지는 이 길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을 통해 매일 저 자신이 놀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끝까지 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김연아 선수도 그 좋은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세례를 받고 묵주반지를 끼며 주님께 의지하였던 이유는 어느 정도 이상에서는 신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고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힘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 과정 안에서 자신이 놀라는 업적을 달성하기 때문에 그것이 즐거워 끝까지 갑니다.

세상 사람들의 의견보다 성령께서 자신 안에서 이뤄내시는 일에 더 놀라기 때문입니다.


산채로 관속에 들어가 땅에 묻혀 일주일을 버틴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높이 24m인 기둥 꼭대기에서 35시간을 안전 장비 없이 서 있기도 했습니다. 또 런던에 가서는 투명상자에 들어가 44일 동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물만 먹고 견디는 단식에 돌입했습니다. 끝나고 나니 체중이 25kg이나 줄어있었습니다.


마술사 ‘데이비드 블레인’은 이처럼 의지력이 필요한 묘기를 선보여왔습니다. 고통스럽고 환각이 보이고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블레인은 참고 또 참으며 목표를 이뤘습니다. 그는 왜 자기 자신에게 이런 혹독한 고통을 주면서 업적을 이뤄내려는 것일까요?


블레인이 다음으로 도전했던 것은 물속에서 호흡을 참고 버티기였습니다. 세계기록을 세우기 위해 블레인은 1년 동안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물속에서 심장박동 수를 낮추는 법을 배웠습니다. 심신이 완전히 이완되어 심장박동수가 1분에 50회 이하로 떨어졌고 때로는 20회 밑으로도 내려갔습니다. 호흡법을 익혔고 물속에서 ‘명상’하며 움직이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하여 2008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만인이 보는 앞에서 세계기록에 도전했습니다. 그때까지의 세계기록은 16분 32초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영장에서 연습했던 것과는 달리 방송국 촬영장은 방해요소가 많았습니다. 촬영을 위해 몸을 바로 세워야 했는데 몸이 고정되지 않아 계속 움직여야 했고 유리 밖으로는 청중이 보고 있었으며 스텝진이 부주의하고 심장박동 모니터를 가까이 두어 삑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긴장이 되자 심장박동 수가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50회 이하로 내려가야 하는데 시작 2분 후 맥박수가 130까지 증가했습니다. 8분이 지나자 벌써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10분이 지나자 사지에서 피가 돌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이 덜덜 떨렸습니다. 13분이 지나자 팔에 감각이 없고 가슴에 통증이 왔습니다. 숨을 쉬고 싶은 충동에 블레인은 기절 직전이었습니다.


15분 후, 심장박동이 거칠어졌습니다. 맥박수가 150에서 40으로 다시 100으로 오르내렸습니다. 심장 발작의 징조였습니다. 16분, 블레인의 몸이 살짝 떠올랐지만, 블레인은 기절할 것 같은 느낌 속에서도 몸을 수면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고통과 충동 속에서 사경을 헤매다 청중의 환호 소리가 들렸습니다. 세계기록을 깼다는 의미였습니다. 블레인은 시계를 한 번 쳐다본 후 그로부터 1분 후, 세계기록 17분 4초를 달성하고 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출처: ‘온갖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 유튜브 채널, ‘책그림’]


데이비드 블레인은 그 지독한 고통과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자기 의심과 최악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버티며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훈련’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절제 훈련을 해 왔습니다.

추운 날에 티셔츠 한 장만 걸친 후 몇 킬로미터씩 걸어 다녔고, 침대 대신에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잤고, 옷장 안에서 꼬박 이틀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11살 때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나흘 동안 물만 마시며 단식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고행을 왜 하는 것일까요? 업적을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자신을 이기는 힘이 자신 안에 있다는 것에 매번 놀라워합니다. 자기만족이 아니면 타인에게서 오는 만족만으로는 이런 고행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아테네의 위대한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기 전에는 음식을 먹지도, 물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보리빵을 산해진미보다 더 맛있게 먹었고 시냇가에서 길러온 물을 와인보다 더 달게 들이켰습니다. 디오게네스는 인간이 욕구에 복종하여 욕망을 통제할 줄 모르는 탓에 마음의 평온을 찾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비드 블레인은 말합니다.

“안락함을 부수는 공간이 제겐 항상 성장의 장소로 다가옵니다.”


오프라 윈프리도 자신을 이긴 위대한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어렸을 때는 험한 인생을 살았지만, 책 읽기와 감사일기 등으로 이겨내며 최고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자신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사람들의 작은 비판이나 작은 실패에도 금방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녀를 버티게 만든 것은 자기를 이기는 신기함이었습니다. 그 신기함이 자기에게서 나오지 않고 절대적인 존재에게서 온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 신비로운 힘을 우리는 ‘성령’이라 부릅니다. 성령께서 우리 자신을 이기게 하고 우리 힘으로 이뤄낼 수 없는 일을 하시며 우리를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게 하십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매일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이들은 세상의 평판과 실패 등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끝까지 가게 만드는 요인이 외부에 있지 않고 바로 자신 안에서 흘러넘치는 성령의 힘에 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가려면 성령의 힘으로 내가 나를 십자가를 통해 극복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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