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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3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4-30 조회수 : 3077
생명으로 이끄는 길: 열매를 위해 꽃을 떨어뜨리는 길 
 
 
오늘 복음도 역시 죽음을 앞두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함께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이유가 아버지께 가서 우리가 거처할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목적은 당신을 따르는 이들도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당신 의견과 당신 삶을 따라야만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의견을 따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누구나 어떤 의견을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아주 많은 사람이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그 의견대로 살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돈과 명예, 쾌락에 빠져 살아갑니다. 
 
아마 지금 우리가 즐겨 받는 의견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내가 유튜브나 TV, 인터넷에서 어떤 정보를 많이 접하는지 살펴보면 될 것입니다.
보통 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할애하여 보는 프로그램이 내가 따르고 싶은 의견이 무엇인지 반영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수많은 사람이 이런 의견을 주고 저런 의견을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의견의 홍수 속에서 참 생명으로 이끄는 의견을 어떻게 구분해 낼 수 있을까요?
며칠 전에 우연히 TV를 보았는데 귀신이 나타나 장군에게 전투에 관한 의견을 주는 야사 역사 이야기였습니다. 
 
신립 장군이 소년 시절 경기도 광주에서 무술을 연마한 후 조선 시대 모자인 초립을 쓰고 외출을 하려는데
보라매 한 마리가 날아와 신 장군의 초립을 낚아채 남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신 장군은 초립을 찾으려고 보라매를 쫓아 달려가다 보니 어느 기와집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날은 저물고 배는 고파 할 수 없이 주인을 찾았으나 과년한 한 처녀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처녀는 한숨을 쉬면서 하는 말이 오늘 저녁은 자신이 귀신에게 바쳐져 죽는 날인데 나를 살려만 주신다면
초립은 찾아 드리겠노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신 장군의 호기심도 있고 자신의 담력이나 무술도 시험해 보려고 처녀를 병풍 뒤에 숨게 하고 요귀들과 맞섰습니다.
삼경이 되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당에서 소란이 일더니 괴수들이 나타났고 신 장군은 그것들을 물리치고 여자를 구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신 장군이 작별을 고하니 처녀가 홀로 남은 자신도 장군님을 따라 같이 가겠다고 합니다.
신 장군은 자신이 이미 혼인한 처지이니 그럴 수 없다고 완강히 거절하였습니다.
종으로라도 써 달라는 그녀의 말을 등 뒤로 하고 떠날 때 처녀는 귀신이 되어서라도 장군과 함께하겠다며
몸을 던져 자살합니다. 
 
그 뒤에 신 장군은 무과에 급제하여 오랑캐를 쳐부수고 북병사에 올라 그 용맹과 지략의 명성이 국내에 떨쳤습니다.
임진왜란 때 부산에 상륙한 왜적이 파죽지세로 영남의 각 읍을 석권하고 북상하니 서울 장안은 불안에 떨었습니다.
선조임금은 신립 장군에게 나라의 흥망이 장군의 몸에 달렸으니 적을 막아 나라의 근심을 없애라고 명령하고
큰 칼을 내려 명령에 불복하는 자는 참하라고 어명 하였습니다.
 
신 장군은 불시에 모병한 8천 명의 군사를 지휘하여 새재에 이르렀습니다.
신 장군은 장안으로 가는 실질적 마지막 관문인 새재에서 왜군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군졸들이 오합지졸인 데다 수적인 열쇠, 그리고 조총 등의 무기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이때 꿈에 전에 자신이 목숨을 구해주었던 처녀가 나타나 장군을 도와줍니다.
장군의 정예부대는 말을 타는 기마부대였습니다. 따라서 새재와 같은 산에서 전투를 벌이면 그들의 능력이 발휘될 수 없으니 탄금대로 옮겨 진을 치라고 권합니다.
왜군이 아무리 소총을 지녔다 해도 명중률이 낮고 배수진을 치면 오합지졸인 군사들도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어 승리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신 장군은 자신이 구해준 처녀 귀신의 말을 듣고 진을 새재에서 탄금대로 옮기자고 합니다.
그러나 종사관 김여물 등 뛰어난 부관들이 이를 절대 만류합니다.
천의 요새를 버리고 왜 평지로 내려가 그 많은 병사와 싸워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신 장군은 선조가 준 칼로 위협하며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목을 치겠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군대는 탄금대로 내려갔고 전투에서 왜군들에게 몰살을 당해 강줄기가 피로 물들었습니다. 
 
TV 프로그램 ‘천일야사’에서 처녀 귀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패배할 것을 몰랐단 말이오.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위했다면 내 시체라도 거두어 제사를 지내주었어야 할 것이오.
당신은 당신을 위해 나를 구한 것이고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떠난 것이오.
나는 당신을 속여 이 한을 풀려고 한 것이었소.”
 
귀신에게 속았음을 안 신립은 그 자리에서 자결하고 그렇게 서울까지의 길을 터 준 덕분으로 선조는 피난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가 야사이기는 하나 나름대로 생각할 거리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신립이 훌륭한 장수이기는 하나 모든 참모가 반대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은 자신의 의견에 그만큼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결정은 왜군들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야사만 놓고 본다면 신립은 위대한 장군이라기보다는 보편적이지 않은 의견에 집착하는 고집불통으로
자기 명예만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려는 사람은 결국 생명을 주지 못하는 것의 의견을 받아들입니다. 같은 부류끼리 어울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죽어야 하는데 살려고 발버둥 치는 존재입니다. 꽃으로 치자면 떨어져야 하는데 끝까지 버티는 꽃입니다.
세포로 치자면 암세포와 같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 버티는 이유는 그 생명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열매는 꽃이 떨어져야 맺힙니다. 
 
“꽃이 떨어져야 열매가 맺힌다.”
이것이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의 법칙입니다.
꽃이 떨어지지 않으면 생명의 씨앗을 품은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김창옥 씨는 어떤 신부님으로부터 “자존심의 꽃이 떨어져야 인격의 열매가 맺힌다.”라는 충고를 들었다고 합니다.
스스로 죽을 줄 아는 사람이 생명을 간직합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시는 이유는 당신의 십자가가 유일한 생명이신 아버지께 가는 길이란 뜻입니다.
야사에 나오는 신립 장군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명예를 추구하였기 때문에 꽃이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의견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죽어야만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누가 참 생명을 주는 의견일까요? 
 
우리가 유튜브나 여러 정보를 접할 때, 과연 그런 것들이 이 세상에서 내가 꽃을 떨구고 십자가를 지게 만들어
이웃을 살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영화롭게 만들어 세상에서 꽃처럼 빛나게 하는 것인지 살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죽이는 정보는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의견이고, 이 세상에서 나를 살게 만드는 의견은
나를 귀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생명과 진리의 길은 당신을 죽이고 아버지로 사셨듯, 우리 자신을 죽이고 그리스도로 사는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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