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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3-27 조회수 : 3047

3월27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에제키엘 37,21ㄴ-28
요한 11,45-56
 
 
오늘 복음은 유다 지도자들이 의회에 모여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는 내용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분을 믿게 되면 로마인들이 자신의 나라를 짓밟게 되리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멸망하게 만든 것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한 오늘의 회의 때문이었습니다.
살자고 한 회의가 멸망으로 이끈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렇다고 그 안에 성령께서 좋은 의견을 주시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회의 의장인 가야파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라고 평가합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성령께서 도와주시려 해도 멸망의 길로 가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회의를 합니다. 회의는 모두가 잘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회의들이 결국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는 탁상공론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정에서도 회의하고, 본당에서도 하고, 직장에서도 하고, 나라에서도 하는 게 회의인데 이 회의가 좋은 결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절실한 준비가 무엇일까요?
바로 ‘좋은 분위기’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분위기를 망치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긴’ 회의입니다.
긴 회의 안에는 교만이란 것이 녹아있습니다.
길게 회의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내리라는 인본주의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의가 길어지면 분위기는 나빠집니다. 기분이 좋을 때 빨리 끝내야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Alexander)과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아시아의 고대 국가 프리기아(Phrygia)의 고르디아스왕은 자신의 전차에 아주 복잡한 매듭을 묶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매듭을 푸는 자가 세계를 정복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남겼습니다.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이 매듭을 풀기 위해 애를 썼지만, 너무 복잡하게 묶인 매듭을 푸는 자는 없었습니다.
 
이후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를 정복한 여세를 몰아 소아시아 지역까지 정복하며 고르디움에 이르렀고,
매듭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단숨에 전차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몇 차례 매듭을 풀려고 했지만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기분이 나빠지려는 찰라, 알렉산더는 갑자기 칼을 꺼내서 전차에 묶인 매듭을 단숨에 잘라 버렸습니다.
매듭은 전차에서 풀리게 되었고, 고르디아스의 예언처럼 훗날 알렉산더는 세계를 정복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장차 ‘리더’가 될 사람이라면 자신의 기분을 잘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리더가 기분이 나쁘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 기분을 받아 모두 기분이 나빠지고 우울해집니다.
 
오늘의 회의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두려움과 걱정, 그리고 근심과 미움이 뒤섞여 있었고 카야파는 그런 안 좋은 기분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멸망을 가져오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회의에 관한 이런 유명한 연구가 있다고 합니다.
돈을 잘 버는 팀은 회의를 잘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의를 어떻게 잘 운영했다는 말일까요?
운영자의 능력도 있겠지만, 잘 운영되는 회의는 부정적인 언어보다 긍정적인 언어가
최소한 3배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긍정의 언어란 칭찬과 이해, 공감을 위한 질문과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회의는 분위기도 좋고 결국엔 돈도 잘 버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회의 회의 장면을 보면 ‘저런 분위기에서는 좋은 판단이 나올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그 이유는 오늘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유다 지도자들의 회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결정이 나올 수는 없는 일입니다.
 
좋은 판단은 좋은 기분에서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회의는 ‘짧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오래 할수록 좋은 결과를 내나요? ‘장고 끝에 악수 둔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10년 연애를 하고 재고 잰 끝에 결혼하여 1년 뒤 이혼하기도 합니다.
혹은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하였는데, 의외로 잘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을 오래 하지 않는 것이 겸손입니다.
생각을 많이 할수록 기분이 안 좋아지고 그러면 잘 되자고 한 회의가 멸망으로 이끄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기분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와가 뱀과 대화할수록 기분이 좋아졌나요?
‘왜 다 주시지 선악과는 바치라고 하셨나?’라며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안 좋은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을 멸망으로 이끌었습니다.
자기 생각에 신뢰를 두는 행위는 하느님을 덜 믿는 행위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을 많이 하면 왜 기분이 좋아질 수 없는지를 말하겠습니다.
인간의 미래는 자신들이 하는 지금의 판단에 달렸습니다. 
판단은 기분에 좌지우지됩니다.
그런데 기분은 욕구에 달려있습니다.
 
욕구가 생기면 기분이 안 좋아집니다. 두려움이 커집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잃게 될 두려움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하는 판단들은 잘못되게 되어있습니다. 생각은 이 욕구들을 성장시킵니다.
 
하와가 뱀과 대화할수록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진 것과 같습니다.
기도하고 단순하게 결정합시다. 기도는 오래 하고 결정은 빨리 내립시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해당하고 공동체의 회의에도 해당합니다.
 
기도를 자주, 그리고 오래 하면서 하느님의 능력에 맡기기보다는 인간의 능력에 집착하는 교만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잘 될 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한 오늘 복음의
산헤드린 회의였습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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