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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2-18 조회수 : 3061

 십자가 ‘세 개의 못’의 의미


사순절은 자기를 죽이는 시간입니다. 자기를 버려야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도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야 하는 것처럼,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기를 죽이는 십자가의 삶이 어떠한 방법으로 이뤄지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집니다. 답은 뻔한 것이지만, 이영숙 베드로 수녀님이 만난 또 한 명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건 안드레아 형제님은 간암으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이분의 특징은 5분마다 진통제를 놔 달라고 찾는 것입니다. 방금 진통제를 놓았는데도 5분도 안 되어서 한 시간이 지났다며 매우 고통스러워하였습니다. 


수녀님은 형제의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었습니다. 대건 안드레아 형제는 일 때문에 춘천에 내려가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시골 성당이지만 잘 다녔습니다. 그런데 워낙 봉사할 사람이 없어서 본당 신부님이 총회장 좀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하지만 학력이 떨어지는 노인분들만 있는 곳에서 봉사하다가는 고생만 할 것 같아서 끝까지 거부하다 그것도 힘들어 오랜 시간 냉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초등학교 나온 총회장과 글도 제대로 모르는 사무장이 있는 시골 성당을 조금은 무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과 어울려 골프, 테니스, 등산 등을 즐겼습니다. 암이 찾아오기까지 그의 삶은 행복 자체였습니다.


수녀님은 그 형제가 수없이 돌아다닌 즐거웠던 여행 기억들을 기쁘게 들어주었습니다. 그러자 형제는 자신도 모르게 몇 시간을 아픈 줄 모르고 여행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진통제도 없는데 아픔을 잊은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형제는 설악산도 못 가본 수녀님에게 꼭 좋은 곳을 구경시켜 드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수녀님은 형제가 묵주기도라도 할 수 있게 묵주반지 하나를 끼워주었습니다. 냉담하며 기도하는 법을 다 잊은 그 형제에게 묵주기도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는 병실에서 나왔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자신이 갔던 아름다운 곳의 이야기를 수녀님에게 해 주며 고통을 잊었고 그렇게 며칠이 흘렀습니다.


수녀님 침실에서는 호스피스 병동이 다 보였습니다.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병실은 분명 고통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환자들 방이었습니다. 가족이 춘천에 살아서 그 형제에게 아내는 주말에만 찾아왔습니다. 수녀님은 참 안타까워서 밤에 일어나 그 형제 방을 찾아갔습니다. 형제는 아픔을 잊기 위해 손가락에 낀 묵주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가락이 까맣게 죽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수녀님은 묵주반지를 빼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호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요, 수녀님. 손가락이 끊어져도 저 이거 안 뺍니다. 제가 그동안 기도를 건성으로 했었습니다. 남을 위한 기도도 안 해 봤고, 부모님 연도도 진심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했습니다. 수녀님이 부모님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나한테 상처 준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하셨으니 한번 해 보자, 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비몽사몽 성모송을 하는데, 제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안아주는 걸 느꼈습니다. 꿈인가 생시인가 해서 돌아보는데 꼭 어머니가 저를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처음에는 ‘우리 어머니인가? 마누라인가? 누가 나를 안아주지?’ 했는데, 나중에 보니 성모님이셨습니다. 그때 밤새 아프던 고통이 다 사라지더라고요. 그렇게 제가 대여섯 번은 성모님께 안기는 느낌을 받고 통증에서 벗어났습니다.”


형제님은 그렇게 아버지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한 죄책감을 덜어냈고 지금까지 앙금이 있던 모든 사람을 기도로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병자성사를 통해 그동안의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부님의 안수를 받으면서는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삶이 후회되었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편안한 모습으로 선종하였습니다.


장지는 용인이었습니다. 인천에서 출발하여 용인까지 가는데 도착시각은 넉넉잡아 오후 1시 30분이었습니다. 버스 운전기사는 자주 다니던 길이었는데도 몇 번을 길을 잃었고 5시나 되어서야 장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길을 잃을 때마다 봄꽃들이 아름답게 피고 개울물이 맑은 곳을 지나쳤습니다. 수녀님은 형제님이 해 준 약속이 기억났습니다.


“수녀님, 안 가보신 데가 너무 많네요. 좋아요! 제가 이 두 다리만 나으면 수녀님 모시고 꼭 꽃구경 시켜드리겠습니다. 약속드리죠. 전 한 번 약속하면 꼭 지키는 사람이거든요.”


[출처: 『내 가슴속에 살아있는 선물』, 이영숙 베드로 수녀, 비움]


대건 안드레아 형제가 살려고 할 때는 사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성당에서 봉사하며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시간 낭비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다 아버지 임종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물론 기도도 잊어버릴 정도로 신앙생활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작은 아픔도 참아낼 수 없는 사람으로 죽음만 기다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 수녀님을 만나고는 반대 상황이 되었습니다. 베드로 수녀님에게 여행을 시켜드리고 싶은 마음도 생겼고 손가락이 죽어가면서도 묵주반지를 빼지 않으려 하며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몸은 죽어도 기도는 멈추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이유는 기도 안에서 여행하는 것에 비길 수 없는 성모님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하십니다. 대건 안드레아 형제가 자기 목숨을 구하려 할 때 목숨을 잃게 되었고, 자기 목숨을 잃어도 상관없다고 여길 때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교회는 자기를 죽이는 방법을 ‘기도-단식-자선’으로 제시합니다. 그렇게 봉사를 싫어했고, 그렇게 자기 몸만 챙겼고, 그렇게 기도를 거부했던 분이 죽음 앞에서 수녀님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싶어졌고, 몸이 썩어들어가도 기도만 할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도-단식-자선’이 아니면 ‘마귀-육신-세속’이 나를 옭아매서 죽음으로 이끕니다.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단 두 개뿐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지 않으면 당신을 절대 따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믿는다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명확할 수밖에 없습니다. 살려면 죽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죽는 방법은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개의 못이 필요한데 그것이 ‘기도-단식-자선’이라는 못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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