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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2-01 조회수 : 2858

왜 악령의 문제를 인간의 나약함 때문이라고만 하는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치유해주시는 내용입니다.
그 사람은 게라사 지방의 무덤에서 살던 이었습니다.
악령이 살게 만드는 곳이 무덤입니다.
악령은 예수님께 달려와 이렇게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이 사람은 말로만 들으면 분명 교회 안에 머무는 사람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 명확히 알고, 또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묻습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솔직히 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수치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힘에 눌린 마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고장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고 하며 자신들을 돼지들 안에 들여보내 달라고 청합니다.
그 고장 사람들에게 아직도 할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그들을 돼지들 안으로 들여보내십니다.
게라사 사람들이 돼지를 쳤다는 말은 그들도 ‘사실상’ 악령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돼지들이 호수에 빠져 죽자,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 고장에서 떠나 달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마귀들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그 많던 악령들이 지금은 왜 잘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돼지들 안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섬기는 것이 돼지지 악령이 아니라고 믿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악령은 더 깊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성당에 다니면서도 마귀들, 혹은 마귀들이 들어있는 악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그 악습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려 하지만 그들은 악습을 벗어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악습의 이름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악습이 악령 때문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본인이 악령에 들렸음을 솔직히 시인하면 참 편합니다.
악령을 선택할 것인지, 그리스도를 선택할 것인지 본인이 결정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애매하게 자신의 죄를 인간의 본성적인 부족함 때문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만다면 그 사람은 점점 자신도 모르게 무덤 속으로 끌려들어 갈 수도 있습니다. 
 
성당에 다니면서도 재산을 자랑하고, 먹고 노는 것을 자랑하고, 남보다 인정받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배하는 그런 악령의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그 이름을 솔직히 고백할 수 있을 때야만 예수님을 ‘실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악령의 영향을 제거하러 오셨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만드는 내 안의 것이 ‘뱀’이라고 고백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뱀이 결국은 나를 사탄으로 만드는 것이니 그놈이 그놈입니다.
에덴동산의 뱀은 우리 안에 있으며 사탄의 힘과 결합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인간의 나약함으로 포장하면 돼지 안에서 악령을 보지 못하여 예수님을 내쫓는
게라사인들과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영화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아넬리제 미켈’이란 독일 여자 청년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에밀리 로즈에게 악령이 드는 것을 허락하시고 에밀리 로즈는 세상에 악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악령에 시달리는 지옥의 고통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사실일 수 있다면 에밀리 로즈는 악령이 들렸어도 성녀와도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어쨌건 그 교구 주교는 구마 신부에게서 에밀리 로즈를 통해서 하는 악령의 말들을 녹음시켰고 과실치사로 재판을 하는 중에 증거자료로 제출되었습니다.  
 
악령은 여러 언어로 말을 하고 있었고 자신이 어떻게 교회 안에 침투하여 인간의 이성을 흐리게 만드는지
어쩔 수 없이 실토하고 있었습니다. 
 
사제는 끊임없이 악령의 이름을 묻습니다.
악령은 결국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나는 카인과 함께 했었고, 나는 네로 안에도 있었다. 한때 유다와도 함께 했으며, 내가 바로 군단이며, 내가 벨리알이다. 그리고 나는 루시퍼이며, 육신의 악마다.” 
 
죄는 항상 악령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마귀들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악습과 죄를 즐김으로써 마귀들과 함께 주님을 못 박았으며, 지금도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CCC 598)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죄를 통해 우리가 악마와 결탁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돼지를 악령과 하나 되게 만드셨습니다.
게라사인들이 해오던 악습이 곧 마귀 들린 것을 섬겨오는 것이나 다름없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율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라 핑계를 대겠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그 돼지의 이름이 솔직히 무엇인지 대답할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돼지는 돼지지 악령과 상관없는 것처럼 무덤에 살던 사람만 악령에 들렸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본인이 악령에 들렸다고 알았던 사람은 구원을 받았고, 자신들이 하는 일이 악령과 상관없다고 믿었던 이들은 예수님을 몰아냈습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를 죄짓게 만드는 자아의 모습은 뱀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에덴동산의 뱀을 사탄이라 불러도 될 것입니다.
그래야 사탄에게 유혹받으신 예수님도 쉽게 이해됩니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누구나 사탄에게 유혹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포장되면 결국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지고 맙니다.  
 
내 안에서 악령과 결탁하여 나를 죄짓게 만드는 자아라는 돼지 속에 숨어있는 것이 뱀의 모습임을 명확히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 됩니다.  
 
인간의 나약함은 인간이 치료할 수 있지만, 악령은 주님만이 물리쳐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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