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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3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1-31 조회수 : 2817

1월31일 [연중 제4주일] 
 
복음: 마르코 1,21ㄴ-28 
 
훌륭한 교사는 제자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사람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는데 “권위 있는 교사”로서 율법을 가르치고 계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율법을 가르치는 율법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권위’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는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라고 말합니다. 
 
마르코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가 있으셨다는 근거를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에게서 그 영을 쫓아주시는 것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람은 육-혼(머리)-영(마음)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나쁜 영을 쫓아낼 수 있어야 
참다운 율법 교사일 수 있는 것입니다. 
 
나쁜 영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마음에서 나오는 세속-육신-마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돈에 대한 욕심, 육욕을 채우려는 마음, 교만함을 쫓아주는 교사가 참된 율법 교사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르쳐도 그러한 욕심들을 더 크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권위 없는 율법 교사가 됩니다.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는 한 범죄집단이 아이를 납치해 돈을 받아내려 했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아이를 키우게 된다는 설정으로 시작됩니다. 
 
이 5명의 범죄자 집단은 각자가 좋은 아버지가 되려 합니다. 
한 사람은 엄격하고, 한 사람은 무섭고, 한 사람은 이상하고, 한 사람은 자상하고, 한 사람은 이해심이 깊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모습은 결국 우리가 보고 자란 아버지에게 다 있는 성격입니다. 
 
아이는 순수한 마음을 지키고 싶습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한 여학생을 사랑하고 싶은. 
그런데 그런 아버지들 사이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잔혹한 킬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삶을 살려고 할 때마다 지하에 가둡니다.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괴물이 있고 그 괴물 때문에 매우 고통스러워합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괴물은 환상이지만 무척 자신을 괴롭힙니다. 
 
그 괴물은 실상 자신을 키우는 아버지들이었습니다. 
아버지들은 아이가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 되도록 교육합니다. 
그런데 무자비한 아버지 석태가 그 괴물을 없애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 괴물과 하나가 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무서운 아버지들의 범죄집단과 하나가 되어 괴물이 되어버리면 그 괴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석태의 경험이었습니다. 
괴물이 되면 괴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그리고 그 경험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화이는 자신의 친부모까지도 죽이려 하는 그 엄청난 괴물을 죽이고 자신의 순수함을 지키기로 합니다. 아버지들을 모조리 죽입니다. 
괴물과 싸워 괴물을 죽인 것입니다. 
아이는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을 알아준 한 학생을 멀리서 사랑할 수 있는 순수한 소년으로. 
 
우리는 누군가의 교사들입니다. 특별히 자녀에게 그렇습니다. 
자신이 세속-육신-마귀의 나쁜 영에 사로잡혀서 더는 그것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자녀도 그렇게 키워서는 안 됩니다.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싸우게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아이도 그 괴물에 사로잡혀 비록 그것을 괴물로 보는 고통에서는 벗어나겠지만, 그 괴물의 하수인이 되어 또 다른 괴물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 악령에 들리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는 참다운 교사가 되어 아이 심장에서 그 괴물을 태워버려야 합니다. 
 
이런 교사가 되려면 먼저 자기 심장이 성령으로 불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그 불이 제자의 심장에서 괴물을 태웁니다. 
이것이 마귀를 쫓아내신 그리스도의 교육법입니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학생 하나가 졸업을 앞두고 학업에서의 해방감을 누리기 위해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조그마한 산장 숙소에서 어떤 노신사를 만났습니다. 
여러 가지 대화가 오고 가던 중에 노신사가 그에게 묻습니다. 
 
“학생은 무엇을 공부하고 있소?”
“방금 수학을 다 마스터했습니다. 끝을 내버렸습니다.” 
 
노인이 한참을 웃었습니다. 
처음엔 기분이 나쁘다가 뭔가 범상치 않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을 하시는 분입니까?”
노신사가 웃으며 대답을 합니다. 
 
“나는 방금 수학 공부하기를 시작했소.”
학생은 조심스럽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화이트 헤드라고 하오.” 
 
화이트 헤드는 영국 대학교수로 하버드 대학에서도 강의한 적이 있는 유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였습니다. 
 
“보통 교사는 지껄인다. 좋은 교사는 잘 가르친다. 훌륭한 교사는 스스로 모범을 보인다. 
하지만 위대한 교사는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화이트 헤드가 한 말입니다. 
화이트 헤드는 이 짧은 대화로 수학 전공자의 심장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리고 그의 교만한 마음을 태워버렸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사의 모습입니다. 
 
저는 화이트 헤드의 말을 이렇게 종교적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보통 교사’는 자신도 모르는 것을 가르칩니다. 
이런 교사는 대부분 남이 써 놓은 것을 읽는 수준에 그칩니다. 
학생들은 무슨 말인지 통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런 교수법은 학생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듭니다. 
 
‘좋은 교사’는 자신이 이해한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수준이 아닌 자신의 수준으로 가르칩니다. 
학생들은 여전히 어렵다고 느낍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자랑하는 수준에 머물며 학생들이 자신을 존경해주기를 바랍니다. 
 
‘훌륭한 교사’는 자신이 이해한 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 가르칩니다. 
그러니 많은 경험과 사례들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가르침을 이해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지만 ‘위대한 교사’는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지핍니다. 
그 불은 이전에 추구하던 모든 욕망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태워버립니다. 
그 불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악령을 몰아냅니다. 
학생들의 마음 안에는 세속-육신-마귀의 악령이 있습니다. 
그 어떤 교사든 그 악령을 몰아낼 수 없다면 그 교사는 권위 있는 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내 가슴에 지펴진 불로 제자의 가슴에 불을 지필 수 있는 교사가 권위 있는 그리스도를 닮은 교사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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