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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1-25 조회수 : 3115

회심의 방향은 나로부터 교회로 
 
 
오늘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다 하느님을 위한다는 자기 생각에서 나온 행위입니다.
당신을 위하는 바오로의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나타나시어 바오로에게 당신을 섬기는 올바른 길을 알려주십니다. 주님을 뵈온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여쭈어봅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때 예수님께서는 해야 할 일을 알려주십니다.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 줄 것이다.” 
 
이미 바오로가 어떤 일을 하도록 결정되어 있다면 왜 예수님께서 직접 알려주시지 않고 누군가를 통하여 전하게 하실까요?
그 이유는 당신이 그 사람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을 ‘교회’를 통해 알려지도록 섭리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직접 해야 할 일을 바오로에게 알려주셨다면 바오로에게 교회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나타나시어 당신이 세우신 교회를 필요 없게 하실 일은 만무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니아스’라고 교회의 사람을 통하여 바오로가 세례를 받게 하고 복음을 전하도록 교회로부터 파견 받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이나 성모님을 만나 직접 무언가를 하도록 파견 받았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사실 어둠의 세력에 속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정신과 의사인 데이비드 번즈에게 52세 앨리슨이라는 여성이 찾아왔습니다.
그 여성은 10년 넘도록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우울증의 이유가 바로 남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회계사라서 숫자에만 관심이 있고 자신의 감정을 전혀 읽을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 오랫동안 우울하고 외로웠던 이유는 남편 버트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것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부부가 함께 와서 치료를 받아보자고 했습니다.
앨리슨은 이미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는데 무슨 그런 시간 낭비를 또 해야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의사가 딱 한 번만이라도 그렇게 하자고 하니 다음번에는 남편을 데리고 왔습니다. 
 
남편 버크는 아내 앨리슨이 말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의사는 앨리슨에게 남편에 대한 감정을 1분 동안 이야기하고 남편이 그 감정을 잘 알아들었는지
반복해서 말해보게 하였습니다. 앨리슨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자기감정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에요. 온갖 노력을 다 해봤지만, 가슴을 꽉 닫고 있잖아요. 당신 같은 냉혈한 때문에 몇십년 동안 외롭고 비참했고, 이제는 포기했어요.
내 우울증, 끔찍한 결혼생활, 모두 감정 장애인에 구제 불능인 당신 때문이에요.” 
 
남편은 아내가 한 이 말을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면서 되풀이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점수를 매겨보라고 했습니다.
앨리슨은 매우 놀라며 자신의 말을 100% 잘 알아들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엔 역할을 바꾸어서 버트가 말하는 것을 앨리슨이 듣고 그 감정을 받아들여 되풀이해보라고 했습니다.
버트가 말했습니다.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외롭고 답답했소.
나는 더 가까이 가고 싶었는데 나의 감정을 털어놓으면 비난과 무시부터 해서 점점 말수를 줄일 수밖에 없었소. 나도 단단한 벽에 갇혀서 꼼짝할 수 없는 것만 같았다고요.
당신이 왜 그렇게 말하는가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면서도 여전히 당신의 핀잔이 두려웠소.” 
 
앨리슨은 이 말을 듣다가 버티지 못하고 얼굴을 찌푸리고 일어나 손가락을 버크의 얼굴에 들이밀고는 이렇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무슨 낯짝으로 그렇게 바보 같은 말을 지껄이는 거야! 다 거짓말이야!
입 닥쳐! 멍청이. 정말 참을 수가 없어!”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다음번에 앨리슨은 혼자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도 보셨잖아요. 남편은 바뀔 수 없어요.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없어요.
시간 낭비라고요. 앞으로 저만 혼자 오겠어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제 우울증이 저의 탓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면 그날이 당신과 마지막 상담이 될 거예요.  
 
남편과 똑같은 사람들이거든요. 이미 제 치료사 세 명이 저에게 그런 암시를 해서 제가 잘라버렸어요.
조심해 주세요.” 
 
[참조: 『관계 수업』, 데이브드 번즈, 흐름 출판] 
 
 
앨리슨은 의사를 찾아왔음에도 자기 생각으로 의사의 생각을 바꿔보려 했습니다.
자신을 지독히 믿는 사람은 조언을 해 주려는 의사의 생각까지도 바꾸려 합니다.
이 사람이 우울증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그러려면 먼저 자기 생각을 접고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해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이전에는 지나친 자기 신뢰에서 오는 우울한 마음을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이 마음을 바꾸어주시는 분이 빛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면 바오로처럼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습이 마치 눈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살아왔던 것임을 절실히 깨닫게 되어 교회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게 됩니다. 
 
신앙에서 회심은 ‘나로부터’ 돌아서서 ‘교회로 향하는’ 방향성이 있습니다.
나를 믿는 것에서 교회를 믿는 것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그랬습니다.
자신을 믿다가 자신이 박해하던 교회를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만약 교회에서 행해지는 세례와 고해성사, 성체성사와 복음선포를 위한 파견도 믿지 않고 여전히 내 생각이 우선시된다면 그 사람은 아직 빛이신 분을 만나지 못한 것이 확실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절대 자기 생각을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자신을 불신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속여왔기 때문입니다.
나에게서 나오는 생각이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일 수 있다고 믿어도 대부분 나 자신이나
악령의 목소리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믿으라는 말은 어둠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주일 미사 때마다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지나치게 믿어서 교회와 대적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리스도께서는 나로부터 떠나게 만드시기 위해 우리가 당신이 파견하신 교회에
순종하게 만드십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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