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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1-20 조회수 : 2736

1월 20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복음: 마르코 3,1-6 
 
리더는 살려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마르코 복음은 제대로 보니 정말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
공동체를 통해 병이 치유 받고 죄의 용서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이에서 분란의 원인이 된 터라 아마 공동체의 리더의 자격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바오로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서운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제 복음을 보면 아무래도 리더는 규율보다는 자비와 사랑이 앞서야 한다고 믿는 것은 확실합니다.
장발장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주교처럼 말입니다. 
 
오늘 복음도 역시 리더로서의 예수님의 특별한 모습이 나옵니다.
일단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법을 어기고 사람을 고쳐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속마음을 아시고 이렇게 물어보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이는 “사랑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지 않으냐?”라고 물으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율법이 사랑을 깔아 누르는 집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에 마음이 몹시 아프고 슬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십니다. 병자를 치유해 주십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은 곧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합니다. 
 
예수님도 당신이 안식일에 그렇게 자비를 베풀면 그들에게서 보복이 온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참사랑은 자신이 죽는 두려움도 넘어섭니다.
자기 생각을 먼저 한다면 사랑을 베풀 수도 없고 그러면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리더는 자비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아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이유는 자신의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돈과 명예와 육체적 편안함을 잃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사랑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세속-육신-마귀에 빠진 지도자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는 사랑한다며 공동체를 이끌지만 결국 공동체를 이용해 자기 배를 불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많은 수가 수백, 수천억 원을 횡령하여 자기 주머니를 채웠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을 때 경제가 발전하고 모든 것이 나아진 것 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자만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배를 먼저 채우려는 리더는 공동체에 해를 끼칠 수밖에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잘 압니다.
남미 나라들이 잘 살다가 그렇게 몰락한 이유도 자기 배나 불린 지도자들 때문이고 카다피와 같이 가족들이 배를 불리는 나라의 시민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놀라운 것은 많은 가난한 이들이 그들 때문에 가난한데도 여전히 그들을 또 뽑아준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가난할 줄 알아야 자녀가 배부를 수 있는 것은 진리입니다. 
 
남극을 탐험한 두 탐험가가 있습니다.
우선 로버트 팰컨 스콧(Robert Falcon scott, 1868~1912)입니다.
1911년 12월에 남극에 도착했지만, 그 뒤 9개월 동안 연락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1912년 11월에 그의 일기장과 시신이 발견됩니다.
그의 일기장에는 이러한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신사처럼 죽을 것이며.. (중략).. 안타깝지만 더 쓸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꿈이 사라졌다.”
스콧을 비롯한 7명의 대원은 모두 그렇게 사망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몇 년 뒤 1914년 8월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Henry Shackleton, 1874~1922)도 27명의 동료와 함께 남극에 도착했지만 역시 조난을 하고 맙니다.
그들은 남극에서 무려 1년 7개월을 버티고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구조되었습니다.  
 
새클턴은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대원들을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고 팀을 하나로 만들어 갈라지지 않게 했습니다. 
 
1916년 4월 20일 섀클턴이 대원들을 모아 놓고 중대 발표를 합니다.
그의 지휘 아래 몇몇 대원들이 제임스 커드 호(작은 구명보트)를 타고 사우스조지아섬에 있는 포경기지로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조난한 곳에서 사우스조지아 섬까지는 무려 1280km. 그토록 멀고 까마득한 곳을, 겨우 6m 길이의 갑판도 없는 배를 타고, 지구에서 가장 험난한 바다 위로, 그것도 겨울에 지나가야 합니다.
그 바다에는 시속 100km의 바람이 불고 20m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계획은 만만찮은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섀클턴은 해냈고 또 3000m가 넘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산을 넘는 등의 4개월간의 고생 끝에
조난 후 643일 만에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모두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스콧 선장도 훌륭한 탐험가였지만 섀클턴은 동시에 훌륭한 리더였습니다.
자신의 팀을 하나로 만들 줄 알았고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차리는 지도자 앞에서는 공동체가 갈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는 지도자의 피로 결속됩니다. 
 
피를 내어주어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지도자가 있고 공동체의 피로 자신의 배를 불리는 리더가 있습니다.
일본은 이미 저출산이 자기 나라에 큰 위기가 될 줄을 알면서도 노인에게만 돈을 썼습니다.
노인 복지는 잘 되었을 수 있지만, 경제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정책을 편 이유는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노인 인구가 많으니 그들에게만 잘해주면 정권을 오래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일본은 정권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라도 망해갑니다.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정당이 지금 피해를 보아도 결국 우리나라 미래의 발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살리려는 리더는 공동체를 죽일 것이고 자신을 죽일 줄 아는 리더만이 공동체를 살릴 것입니다.
사랑은 자신을 죽일 줄 모르는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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