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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11-16 조회수 : 1166
11월16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18,35-43 
 
세상을 거스르고 있어야 믿음이다 
 

 
오늘 복음은 예르코에서 한 소경이 예수님께 치유를 받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왜 이 복음이 느닷없이 등장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복음 바로 앞에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세 번째 예고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인과 이방인에게 배척받고 조롱받고 채찍질과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결론은 이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 가운데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이 말씀의 뜻이 그들에게 감추어져 있어서, 말씀하신 것을 알아듣지 못하였던 것이다.”(루카 18,34) 
 
왜 예수님께서 수난과 부활의 예고를 세 번씩이나 하셨는데도 그들은 알아들을 능력이 없었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믿음으로 세상을 거슬러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세상을 거슬러 세상으로부터 죽게 만들고 그 죽음으로 참 행복으로 부활하게 합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보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도 알아들을 능력을 갖지 못합니다.
아는 것만이 보이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약 4년 전에, 저의 일반 대학 친구 중에 12살 딸이 갑자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겠다는 선언을 했다고 어쩌면 좋냐고 물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친구의 모든 월급은 딸의 학비를 위해 소진되어야 할 판이었습니다.  
 
저는 유학은 대학에 들어가서 가도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결국 부모는 딸의 뜻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고등학생이 되어 쓴 『엄마, 우리 이제 떠나자』를 읽고 나니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어머니와 34개의 나라와 61개의 도시를 여행했던 기억을 책으로 낸 것입니다.
그리고 왜 유학을 떠날 결심을 했는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정예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아이는 매우 어릴 때부터 영재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머리도 좋았고 어머니의 교육열도 한몫하였습니다.
교육열이 꽤 높은 곳 중의 하나인 목동에서 자란 예원이는 두 살부터 놀이학교를 시작으로, 다섯 살까지 어린이집을, 여섯 살에는 영어유치원을 다녔고 그것도 모자라 원어민으로부터 따로 영어 과외수업을 하였습니다.  
 
영재 테스트를 받아 영재교육원에 다니며 수학, 바이올린, 미술, 체육 등 각종 사교육으로 바쁜 유치원 시기를 지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는 더 치열하게 살아야 했는데 겨우 8살이란 나이에 학교, 학원, 교회에서 모두 ‘잘하는 아이’, ‘칭찬받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숨이 막히기 시작하였고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하는 ‘모범생’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과 강박감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모두를 경쟁자로 여겨야 하는 환경은 예원이를 지치게 하였습니다.
일정을 매일매일 짜주는 엄마는 더는 엄마로 보이지 않고 자신의 매니저로 보였습니다. 
 
예원이가 힘겨워할 무렵, 어떤 이유에서인지 엄마도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이건 아닌데 ...’라는 말을 자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마 딸을 힘들게 만들어 자신의 만족스럽지 못한 면을 채우려는 모습을 스스로 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그런 엄마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영재엄마라는 타이틀을 버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엄마는 예원이를 ‘대안학교’로 옮겼고 모든 사교육을 그만 받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초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으니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티격태격하는 두 달 동안의 여행이었지만 둘은 그때 다시 엄마와 딸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딸이 엄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엄마가 세상을 이긴 것과 마찬가지로 딸도 부모를 이겼습니다.
두 달 동안의 여행을 하고 나니 어떤 자신감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지금 당장 유학을 떠나고 싶다는 말을 꺼냅니다.
부모는 당황합니다.
예원이는 왜 유학을 하려고 하느냐는 부모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학교생활이 행복하지만 행복하지 않아!” 
 
어쩌면 이것이 우리나라 영재의 비애일 수 있겠습니다.
누구보다 앞서 칭찬만 받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현실.
그러나 예원이는 엄마처럼 세상을 거스를 줄 알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남의 나라 땅에서 혼자 외로움을 견디며 3년을 지내고 난 후, 예원이는 지금까지 자신이 선택한 것 중 경쟁의 압박감을 벗어나기 위해 유학을 떠난 것이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눈먼 이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자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부르짖습니다.
앞서가던 사람들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칩니다.  
 
예수님께서 그제야 돌아보시며 그의 청을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수난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는
아직은 세상을 거스르고 싸울만한 믿음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작게나마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3시간씩이나 통학하고 정신과 약까지 먹으며 버텨서 성적이 많이 추락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서울 소재 대학에 들어간 것만도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오던 길을 돌아설 때 가족은 물론이요, 친구와 세상 사람들로부터 바보라는 눈초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도 지금까지 제가 한 모든 결정 중 사제가 되기로 한 결정이 제일 잘했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세상을 이기셨고 그렇게 부활하셨습니다.  
 
저도 이 결정으로 작게나마 세상을 이겼고 참 행복을 찾았습니다.
믿음이 구원에 이를 정도가 되려면 이렇듯 세상을 이기는 십자가의 수난을 거쳐 부활의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행복을 막는 세상을 거스를 정도의 믿음을 가지도록 합시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세상을 이기는 수난을 거쳐야만 부활의 행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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