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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1-15 조회수 : 1127
11월15일 [연중 제33주일] 
 
잠언 31,10-13.19-20.30-31
1테살로니카 5,1-6
마태오 25,14-30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능하다고 믿는 것뿐입니다> 
 
 
오늘 복음은 ‘탈렌트의 비유’입니다.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하기 때문에
 ‘심판’에 관한 복음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지난주엔 ‘열 처녀의 비유’였습니다.
여기에서는 기름으로 상징되는 ‘성령’을 지켜내기 위해 규칙적인 기도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구원은 ‘믿음’에 의해 결정되는데, 성령을 받기 위해 규칙적인 기도 생활을 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으로 판결이 납니다.
 
오늘 복음은 믿음을 판결하는 또 다른 방법을 말해줍니다.
바로 ‘자신이 믿는 자신의 능력’입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종은 두 탈렌트를 받은 종보다 더 많은 능력을 받았다고 믿고 두 탈렌트를 받은 종은 한 탈렌트를 받은 종보다 더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하느님이 모질어서 자신에게만 적은 능력을 주었다고 불평만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라 모두에게 다섯 탈렌트씩 주신 것입니다.
능력이 없다고 믿는 것은 그만큼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것은 하느님께서 자비롭지 못하신 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악과에까지 손을 뻗친 것입니다. 
하느님이 자비롭다고 믿지 못하는 이들은 그래서 하느님이 주인이심을 인정하기 위해 바치는 
십일조도 소홀히 합니다.
그리고 불평만 하다 자신의 감추어진 능력을 땅속에 묻어놓고 삽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주님 앞에 빈손으로 가는 일이 없습니다.
이 믿음은 ‘자존감’과 밀접히 연결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에이미 커디’는 공부를 꽤 잘하는 학생이었으나 자동차 사고로 뇌에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지적 능력이 상당히 저하되어 남들보다 네 배는 더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조금 느리지만 결국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까지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믿음은 혼자 힘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은사 교수님이 절망에 빠진 에이미에게 “너는 할 수 있고, 너는 하게 될 거야!”라고 말해 준 것에 기인합니다.
그녀는 그 말을 믿었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 원더우먼 자세나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는 자세를 2~3분만 취해보라고 합니다.
 
TV에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뇌는 침을 발산하게 합니다.
뇌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리를 조금 벌리고 양손을 옆구리에 붙이는 원더우먼 자세를 취하면 뇌는 잠시나마 자신이 그런 능력자가 되었다고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슈퍼맨 자세도 있습니다.
슈퍼맨이 하늘을 날 때 양손을 위로 번쩍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선수들이 결승선에 들어올 때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데 이는 승리의 표시입니다.
 
개가 두려울 때는 꼬리를 자신의 몸쪽으로 내리고 머리를 숙입니다.
그러나 강함을 뽐낼 때는 꼬리를 올리고 머리를 치켜듭니다.
보통 사랑받는 주인이 자신과 함께 있어 줄 때 그렇습니다.
주인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기 때문에 움츠러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우리야 더 얼마나 어깨를 펴야겠습니까?
이것이 믿음이 아닐까요?
 
강연에서 에이미 커디의 이야기를 접하고 이런 자세로 용기를 얻은 사람들의수많은 사례가 그녀의 책 『자존감은 어떻게 시작되는가』에 나옵니다.
그중 두 가지만 소개합니다.
 
세이지라는 세 살짜리 아이가 공포영화를 보더니 자신의 인형들이 자신들에게 달려들 것이라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인형을 모조리 치워버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세이지에게 물건을 가져오라고 시키거나 방에 혼자 있으라고 할 때, 잠깐이라도 원더우먼 자세나 슈퍼맨 자세를 취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인형은 숨겨두었지만 언제든 내면의 원더우먼을 불러낼 준비가 되어있다고 믿는 아이는 1년 뒤 두려움에서 거의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윌이라는 남성은 오리건 대학의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업으로 배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기획사가 윌에게 대형 상업영화의 오디션을 보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기껏해야 TV 상업광고에 몇 번 출연했고, 단편영화 두 편에 출연했으며, TV 드라마에 한 번 단역으로 출연한 것이 전부인 그가 전문 프로 배우들이 오디션을 보는
헐리우드 영화에 오디션을 봐서 붙을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까웠습니다.
‘어차피 떨어질 것, 그냥 경험 삼아 가보자!’라고 오디션에 응했습니다.
어차피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니 떨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숨이 목까지 찼습니다.
그는 친구의 조언을 기억하고 화장실로 뛰어간 심호흡을 하며 원더우먼 자세를 2분 동안 취했습니다.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러자 어깨가 펴지고 당당한 자세로 앉아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어떠한 초조함도 없이 스스로 참 잘했다 싶을 정도로 오디션을 잘 봤습니다.
그는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와일드’란 영화에 당당하게 출연자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뿐입니다”라고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내가 무언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면 하느님께서 그만큼 나에게 능력을 주시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능력을 다 주셨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편하게 쉬며 여행 다니다가 죽는 게 어떻게 소원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한 탈렌트의 가치를 땅에 묻어놓는 것과 같습니다.
한 탈렌트도 6억 원에 가깝습니다.
그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금이 됩니다.
나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이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기도할 때 졸지 않기 위해 양팔 기도하듯 두 손을 들고 합니다.
그런데 에이미 커디의 책을 읽으며 이 자세도 슈퍼맨의 자세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몸이 쳐지지만, 양손을 위로 올리면 가슴이 펴집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 자세가 예수님의 십자가상 자세와 비슷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제가 양손을 벌리며 기도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자세와 비슷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자기를 죽이는 자세가 결국은 그리스도처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베드로가 한 것처럼 나도 물 위를 걸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믿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의 결론으로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더 가졌다고 믿는 것이 『더 해빙』입니다.
더 가졌다고 믿는 사람들이 더 가지게 된다는 진리를 세속적으로 풀어쓴 책입니다.
 
믿음은 더 가졌다고 믿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이 세상에서 성과를 내게 될 것이고 주님께 그에 합당한 칭찬과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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