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5일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 11,47-54
예수님은 사랑하면 행복하다는 진리가 육화되신 분
오늘 복음은 ‘표징’에 대한 루카 복음의 결론과도 같은 부분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 구원자’이시다는 믿음을 줄 참 표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라고 하신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만이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면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참 구원자이심을 의심할 수 없게 됩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1938년부터 75년 동안 남성 724명의 삶을 추적 조사한 유명한 연구가 있습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하버드대 학생들과 빈민층의 청소년들도 있었습니다.
이 연구를 책으로 편집한 ‘로버트 월딩어’는 이 연구를 이끄는 4번째 책임자입니다.
이 연구를 통해 얻은 교훈은 무엇일까요?
행복은 부와 명예, 열심히 노력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좋은 인간관계가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말하면, “건강과 행복은 사랑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가족, 친구, 공동체의 질이 좋은 사랑의 끈으로 묶였다면
그 속에 속한 사람은 반드시 건강하고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과 행복이 계속 이어지면 장수하게 되고 그것이 계속 이어지면 영원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 죽음이라는 문을 통과해서 더 완전한 건강과 행복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것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너무나 당연한 가르침입니다.
사랑받고 사랑하면 행복한지 다 압니다.
굳이 엄청난 시간과 엄청난 비용으로 수많은 사람의 삶을 일일이 연구 조사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누군가 사랑이 왜 행복한지에 대한 표징을 보여달라고 해서 이 엄청난 연구가 진행된 것일 테고 그 표징을 찾던 사람은 아마 지금쯤 결과를 듣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표징은 이미 있습니다. 누구나 원하면 체험할 수 있습니다.
모른다고 하면 알면서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도 사랑하면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수많은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구약의 내용을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인정하면서 그리스도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전의 예언자들이 사랑하면 행복하다는 것을 말로 전한 이들이라면 예수님은 그 진실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분입니다.
사랑하여 피를 흘려야 했지만, 부활의 기쁨을 영원히 누리시는 분이십니다.
꽃이 예쁜 줄을 안다고 말하며 사람에게서는 예쁜 사람을 찾아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말이 될까요?
천원의 가치를 안다고 하면서 만 원의 가치는 모른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될까요?
부모의 사랑은 안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은 알아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말이 될까요?
이것이 나중에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한 핑계를 댈 수 없는 이유가 됩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십계명은 믿으며 당신은 받아들이지 않는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유다인들은 예언자들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조상들이 그 예언자들을 죽인 것도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공경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언자들을 존중하면서 예언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는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습니다.
꽃이 예쁜 줄 알면 사람도 예쁜 줄 압니다.
꽃은 예쁘다고 하며 사람은 예쁜지 구별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솔직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좀 솔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것이 곧 표징이 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직하지 못하면 자신들이 이미 가진 표징들을 무시하고 그 표징의 완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행복임을 솔직히 인정만 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며 그분이 구원자이심을 못 알아볼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면 행복하다는 말씀을 듣고 인정한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면 행복하다는 진리가 육체를 입고 내려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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