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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09-14 조회수 : 573

9월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민수기 21,4ㄴ-9
요한 3,13-17 
 
명장은 숙련된 자기만의 무기가 있다 

오늘은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십자가는 자기 자신을 매달아 죽이는 도구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니 십자가 현양 축일은 주님의 십자가를 현양하고 감사하는 날일까요?
물론 그것도 맞겠으나, 내가 어떠한 십자가를 매고 가고 있는지를 살피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만 보며 나의 십자가를 내려놓는다면 그것만큼 십자가 현양 축일과 어긋나는 삶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세가 구리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당신도 높이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구리뱀을 들어 올린 이유는 불뱀에 물린 이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치유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불평불만을 할 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불뱀에 물려 죽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장대에 들어 올린 구리뱀을 보면 살게 하셨습니다.  
 
내가 뱀에 물려 죽어갈 때 구리뱀을 보면 살게 하신 것입니다.
모세의 구리뱀은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아야만 살아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줍니다. 
 
모세는 구약의 예수님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십자가에 매다셨듯이, 모세도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것입니다.
자신도 하느님께 불만을 가질 수 있었으나 자신을 죽여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아무리 자아라는 불뱀에 물렸더라도 모세의 모범을 따르는 이들은 다시 살았습니다.
구원은 자기 안의 뱀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주워 와서 우리 자신을 매달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로마 시대의 것입니다.
지금 불만 가득한 나의 자아를 죽이는 나만의 도구를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자아를 매달면 이제 자아가 나를 통제하지 못하고 내가 자아를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도구들이 모두 십자가가 됩니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아내의 머리를 자신의 모자라고 착각한 사람이 나옵니다.
유명한 성악가로서 지금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인데 그는 노래를 부르지 않을 때는 아이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아내의 머리를 모자로 착각할 정도로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우리도 자아에 지배당하면 사람을 물건처럼 대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 이상하게 행동하게 만드는 자아를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노래를 흥얼거리면 모든 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바로 노래가 십자가입니다.
자아를 통제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그가 정상적으로 살려면 쉼 없이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자매는 원인도 모르게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한 소유의식을 잃어버렸습니다.
리는 자신의 몸을 눈으로 보고 있지 않더라도 손이 있고 발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이것을 원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어떤 수술을 받고 나서 마치 투명인간처럼 자신의 몸이 자신 것이 아니고 자신은 몸이 없는 사람처럼 된 것입니다.
오직 자신이 눈으로 손과 발이 있음을 확인하고 머리로 명령을 내려야 그것이 움직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자아입니다.
이 자매에게는 눈으로 보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일일이 자신이 움직이고 싶은 몸을 눈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 사라져버린 몸의 의식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큰 영향을 주는 사람들의 특징을 하나만 꼽으라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들이 자기 자신을 이기는 각자의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고 봅니다.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역사의 위대한 인물이 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이기는데 사용하는 무기들이 다 똑같지만은 않다는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는 장대를 이용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이용하셨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어떤 장수는 창으로, 어떤 장수는 칼로, 어떤 장수는 표창으로, 또 어떤 고수는 부러진 칼에 줄을 매달아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우선 자신에게 맞는 무기를 찾아야 합니다.
관우, 장비, 여포의 무기는 모두 창이었습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맞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유비는 쌍칼을 휘둘렀습니다.
몸이 창을 쓰기에는 맞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남을 돌보는 일을 해야 하는 마더 데레사가 성 프란치스코와 같은 무기를 쓰면 안 됩니다.
각자의 삶에 맞는 무기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기를 찾았다면 그 무기로 싸우면 누구도 이길 수 있을 만큼 숙련시켜야 합니다.
그 무기로 누구보다 더 많은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이 나의 십자가가 됩니다. 
 
저도 나름대로 무기를 찾고 연습해 가고 있습니다.
저는 호흡과 이명을 이용합니다.
특히 이명이라는 저를 괴롭히는 질환을 이용합니다.  
 
자아에 휩쓸려 다른 생각을 할 때는 이명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명을 의식하면 들립니다.
그리고 이명이 들릴 때마다 주님과 함께 있음을 의식하려 합니다. 
 
이명이 생기면 이명을 안 들리게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저는 그것을 오히려 저의 무기로 담금질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각자의 십자가를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자아를 이기는 무기가 됩니다.  
 
그리고 자아를 이길 때, 다른 이들이 그 사람을 보고 자신도 그러한 삶을 따라가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참으로 현양하는 삶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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