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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8-16 조회수 : 576

8월 16일 [연중 제20주일] 
 
이사야 56,1.6-7
로마 11,13-15.29-32
마태오 15,21-28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성경에서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는 것 같습니다. 
땅에 붙어 기어 다니는 사람, 직립 보행을 하는 사람, 하늘로 오르는 사람입니다.  
 
이 구분은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믿음이 없는 가리옷 유다는 뱀과 같이 되었고, 아직 승천할 가능성이 있는 인간들은 믿음이 있었다가 없었다가를 반복하며, 완전한 믿음에 도달한 사람은 성모님처럼 하늘에서 삽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나안 여인 안에 이 세 부류의 사람의 모습이 다 들어있습니다. 
마귀 들린 딸과 함께 살 때가 땅에 붙어 기어 다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생겨 그리스도께 치유를 청하기 위해 나섰을 때는 믿음이 조금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견뎌 기적을 얻어내었을 때는 하늘의 사람임을 증명하게 됩니다. 
 
이 믿음은 비단 기적을 청하는 것에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소명을 발견하는 것에서도 나타납니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다가 영혼을 구원하는 어부가 되어보겠다고 나선 것이 소명을 발견한 것입니다. 
물론 그냥 편하게 살면 되지 뭣 때문에 고생하느냐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 물고기만 들고 나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끔찍한 일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앞에 나올 때 빈손으로 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원하시는 소명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찾아 소명을 완수하고 그 열매를 주님께 가져가야 합니다. 
분명 그 소명을 위해 져야 하는 십자가를 버리고 주님 앞에 다다랐을 때 그 십자가가 없으면 
건널 수 없는 낭떠러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편한가요? 
가나안 여인이 마귀 들린 딸과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편할까요? 
어차피 우리 모두 이러나저러나 고생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소명을 찾아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고생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믿음으로 사람을 나눈다면, 사람은 일을 시작하지 않는 사람, 시작만 하는 사람, 시작했다면 끝까지 가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그러나 내가 시작한 일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좌절이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끊임없이 좌절을 선물하십니다. 
일단 소리 지르며 따라오는 데도 들은 체도 안 하십니다.  
 
그다음은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라며 사람을 차별하십니다.  
 
그다음은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하시며 거의 멸시까지 하시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도 이 여인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고 하며 굽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이유는 그 과정이 좋게만 끝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희 속담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이란 말이 있습니다. 
밥을 지으려다 실패하면 죽이 됩니다. 그러나 죽이 되는 것이 실패하는 것일까요? 
누구는 죽을 일부러 끓이기도 합니다. 죽만 파는 죽집도 있습니다.
죽도 잘 끓이면 멋진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란 말 안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미국의 어느 원예연구소에서 ‘희귀한 흰색 금잔화의 씨를 보내시는 분께는 
큰 사례 하겠습니다.’라는 광고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액수가 너무 커서 순식간에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금잔화는 주황색이나 갈색뿐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흰색 금잔화를 찾으려고 애썼으나 누구도 찾지 못했고, 
그렇게 이 이야기는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져갔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후 한 봉투에 흰색 금잔화 씨가 보내졌습니다. 
70대 할머니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50대에 이 광고를 보고 흰색 금잔화 만들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금잔화 씨를 뿌려 주황색과 갈색의 금잔화 중에 색이 가장 옅은 것들의 씨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뿌려 또 색이 옅은 것들의 씨만 모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20년 거치다 보니 흰색 금잔화가 탄생하게 됩니다.  
 
전문 지식을 갖춘 어떤 누구도 해내지 못한 보통 시골 할머니가 금잔화의 새로운 종을 만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웨이슈잉’의 『한 번이라도 끝까지 버텨본 적 있는가』라는 책에 소개된 일화입니다. 
이 책의 앞표지에는 ‘승부는 폭발력이 아니라 버티는 힘에서 갈린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진짜 믿음은 끝까지 버티는 것에서 증명됩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말합니다.
“성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달라도 실패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포기하기 때문이다.” 
 
저는 요리를 못합니다. 하다못해 김치찌개도 끓이지 못합니다. 
김치찌개를 생각하면 실패한 김치찌개의 모습부터 떠올리게 되니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입니다. 
시도하지 않으면 김치찌개도 못 끓이지만 시도하고 끝까지 가면 김치찜이라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아는 한 청년은 난독증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기억력도 좋지 않습니다. 
햄버거 가게에 알바로 취직하려고 해도 햄버거 종류를 다 외울 수 없어서 취직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카페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메뉴를 외우는 것도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몇 번을 그만두고 싶어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끝까지 버텨서 지금은 원두 이름과 팥빙수 만드는 것만 배우면 커피숍을 단독으로 운영할 수 있는 모든 기술 배우기가 끝난다고 합니다. 
 
수 없는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이란 정신으로 가야 합니다.  
 
물론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시작했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미리 실패할 것을 생각하고, 미리 좌절할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끝까지 가면 실패는 없습니다. 
밥 아니면, 어쩌면 밥보다 더 맛있는 죽이 됩니다. 
끝까지 가면 밥 아니면 죽이지만, 시작하지 않거나 중도에 포기하면 
먹을 수 없는 쓸모없는 것이 됩니다.  
 
믿음이 겸손과 비례하는 이유는 겸손한 사람에게 그 믿음을 꺾을 두려움을 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행을 멈추었을 때는 생각하고, 생각했다면 실행하십시오. 
그리고 실행했다면 반드시 끝까지 가 보십시오. 
그러면 다음 것을 시작할 때 큰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적어도 죽을 끓일 수 있는 기술은 남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일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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