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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5-07 조회수 : 662

사도행전 13,13-25
요한 13,16-20 
 
​맞아들임은 들어높임이다 
 
 
한때 성공회의 주교가 되기를 꿈꾸었던 사무엘 브랭글이라는 청년이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부스 장군은 그의 지원을 마지못해 허락하면서 그에게 다른 훈련생들의 군화를 닦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낙심한 브랭글은 속으로 ‘내가 군화나 닦으려고 내 꿈을 좇아 대서양을 건너왔단 말인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어느 날 예수님께서 어부들의 발 위로 허리를 굽히시는 모습을 꿈으로 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저는 그들의 구두를 닦겠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가 어느 날 한 어린이의 상처를 지극한 정성으로 치료해 주고 있을 때, 인근에 살던 이웃 주민이 물었습니다. 
 
“수녀님, 당신은 당신보다 더 잘 살거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안 드시나요? 당신은 평생 이렇게 사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데레사 수녀는 대답했습니다.
“허리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콜롬비아 신학교 스티븐 올포드 박사에게 학생들이 물었습니다.
“저희들에게 크리스천 리더십의 비결이 무엇인지 좀 말씀해 주십시오!” 
 
올포드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결이요? 무릎을 꿇으십시오.
눈에 눈물이 흐르게 하십시오.
그리고 심장이 깨어져도 참으십시오!” 
 
가장 단순한 진리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진리가 있습니다.
받아들임은 낮아짐이란 것입니다.
자신 안에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내가 주님보다 높아져있기 때문입니다. 
 
손님을 맞이할 때 우리는 손님에게 일을 시킬까요, 아니면 우리가 할까요?
모든 맞아들임은 내가 종이 되는 일입니다.
아기를 맞아들인 엄마는 어떨까요? 태중의 아기를 위해 봉사자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유는 제자들을 당신 품으로 맞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자들도 예수님을 맞아들이려면 또한 예수님을 높이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라고 하십니다. 
 
산은 물을 담아놓을 수 없습니다.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곡은 산보다 낮으므로 물을 맞아들이고 강은 더하고 바다는 더합니다.  
 
성모님께서 바다와 같은 분이셨기 때문에 은총 자체를 맞아들일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때 성모님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주님을 맞아들이기 위해 주님의 뜻대로 이웃을 맞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웃을 맞아들이지 않으면 주님도 맞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웃들에게 겸손하고 이웃을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이들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를 섬길 줄 모르면 예수님도 섬길 줄 모르는 것입니다.
교회에 발꿈치를 들면 예수님께 발꿈치를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들은 바로 나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시작됩니다.
이웃을 섬길 줄 모르면 교회도, 그리스도도 섬길 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16세기 ‘로마의 사도’라 불리는 재속 사제로 오라토리오회를 창설한 필립보 네리의 일화입니다.
교황은 로마 부근 수도원에 있던 어느 수련 수녀가 거룩한 영성으로 갈수록 명성을 얻게 되자 네리를 시켜 그녀를 조사하도록 하였습니다. 
 
네리는 노새를 타고 한겨울 진흙과 수렁 속 길을 달려 수녀원에 다다랐습니다.
그는 사람을 시켜 수련 수녀를 오도록 했습니다.
그녀가 방에 들어왔을 때, 그녀에게 오랜 여행 때문에 진흙 범벅이 된 그의 신발을
벗기라고 말했습니다.  
 
한 재속 사제가 진흙으로 범벅이 된 신발을 벗기라고 하니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시키는 사제를 판단하고는 자신은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네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수녀원을 떠나 로마로 돌아와서는 교황에게 말했습니다. 
 
“이젠 궁금해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거기엔 성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겸손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 안에 맞아들인 주님이 나를 성전으로 만듭니다.
내가 맞아들인 사람들이 나의 열매들이 됩니다.
하느님 앞에 빈손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모든 이의 종이 되려는 마음으로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내 발밑에는 오로지 나 자신만 있어야 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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