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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4-18 조회수 : 541

4월 18일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사도행전 4,13-21
마르코 16,9-15 
 
교회에 대한 공경과 복음에 대한 공경은 하나다 

어느 날 신문에 나이 드신 어머니를 판다는 광고가 실렸습니다. 
그날 저녁 한 부부가 광고에 적힌 주소를 보고 그 집을 찾아갔는데, 집은 뜻밖에 웅장했습니다. 
벨을 누르자 한 노파가 그들을 맞았습니다. 
남편이 노파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분을 파시는 거죠?”
“바로 나라오. 그런데 남들은 있는 부모도 안 모시려고 하는 세상에 당신들은 
무슨 생각으로 늙은 어머니를 사려고 하오?” 
 
“저와 제 아내 모두 어려서 부모를 잃었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항상 부모님을 모시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부러워했지요. 
그리고 마침 신문에 광고가 났기에 찾아왔습니다.” 
 
머리를 긁적이는 남편의 말에 노파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뜻이 맞으니 이것으로 거래가 성사되었군. 
그럼 이제부터 어머니로서 말을 놓겠다. 
아무래도 너희 가족이 이 집으로 와서 함께 사는 것이 좋겠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너희 부부의 차림새를 보니 넉넉한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나를 모시고 살겠느냐? 
그러니 너희가 이 집에서 함께 살자꾸나.” 
 
“그럼 왜 스스로 돈을 받고 팔겠다고 광고를 하신 겁니까?” 
 
“만일 내가 양자를 구한다고 해보아라. 아마도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겠지. 
하지만 모두 돈을 보고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없는 살림에도 나를 사러 왔으니 진정 내 아들딸이 될 자격이 있다. 
지금부터 이 집과 재산은 너희 것, 아니 우리 것이다. 
나는 너희 가족과 한 식구가 되어 남은 삶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구나.” 
 
이 할머니는 자신을 공경할 줄 모르는 젊은 사람은 돈을 주어도 잘 관리하지 못할 것을 
아는 분입니다. 부모에게 하는 것이나 부모가 주는 재산을 대하는 것이나 다를 수가 없습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누군가 복음을 전하면서도 복음을 전하라고 파견한 교회를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대한다면 그 사람이 전하는 복음은 복음일 수 없습니다. 
 
본당에 있다 보면 하느님을 체험했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어떤 분들은 본당 사제에게 알리고 본당 사제가 안 믿어주면 개인적으로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그리고는 교회가 자신들을 박해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 자체로 그런 체험들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오상의 비오 성인은 교회가 자신의 체험을 받아들이지 않자 몇 년이고 혼자서 잠자코 미사를 했습니다. 
교회가 파견하지 않으면 자신이 전하는 체험이 어쩌면 교회를 분열시키는 잘못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공경할 줄 아는 사람만이 복음도 온전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부모라고 한다면 복음은 그 교회가 주는 재산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저것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성격이 있듯이 하느님도 성격이 있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사랑과 반대되는 행위입니다.  
 
사랑은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인데 그와 반대되는 것은 매우 싫어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 기도하실 때 교회가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본성을 버리시는 행위는 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복음 때문에 교회가 갈라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기쁜 소식을 받았다고 주장할 때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님께서 부활의 기쁜 소식을 각자가 전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모든 여인과 제자들은 일제히 사도들에게로 향했습니다. 
만약 각자가 그 기쁜 소식을 전했다면 교회를 파견하신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도들은 어떠한 증언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사도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불신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사도들에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고 하십니다.  
 
부활을 목격했던 이들 개인을 파견하시지 않고 교회를 파견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가 하나가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당시 교회가 부와 권력에 집착해 있을 때 가난으로 나아가려 했습니다. 
교회는 당연히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를 쫓아낸 교황은 그날 꿈에 자신이 사는 라떼란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프란치스코 성인이 받들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의 회칙을 인준해줍니다. 
이렇게 필요하면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교회가 하나 되게 합니다. 
 
교회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뛰쳐나간 개신교들이나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들은 
하느님께서 당신 기쁜 소식이 교회를 통해 선포되기를 원하셨음을 간과한 까닭에 생긴 것들입니다.  
 
아무리 교회에 불만이 있어도, 자신의 체험이 아무리 강력해도 하느님께서는 그것이 교회를 통해서만 선포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체험이 아무리 강해도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신 교회의 권위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그것을 바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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