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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4-17 조회수 : 560

4월 17일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사도행전 4,1-12
요한 21,1-14 
 
갈릴래아는 모든 것 위에 선교를 참 사명으로 삼는 삶이다 
 
한 자매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애를 한 남자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남편의 외도와 도박과 폭력으로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을 찾아갔는데 신부님은  
 
“이혼하는 것은 자유인데, 한 달만 더 살아보십시오.
이제 아내로 살지 말고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마음으로
선교사라 생각하고 살아보십시오.
그래도 10년을 함께 살았는데 신앙인으로서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라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자매는 한 달은 선교사로 더 참아낼 수 있을 것 같다며 그 충고를 받아들였습니다. 
 
자매는 한 달 동안 시어머니가 잔소리해도 ‘나는 며느리가 아니다. 나는 선교사다.
저 할머니도 구원해야 한다.’라며 참았고, 남편을 대할 때도 ‘저 형제도 내가 구해야 하는 영혼이다.’라고 생각하며 대했습니다. 
 
며칠을 지켜보던 남편이 왜 이렇게 사람이 달라졌느냐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형제님, 저는 당신을 위해 한 달 동안 파견된 선교사예요.”라고 말했고,
그렇게 정말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유일한 아내가 떠날까 두려워 남편은 자신이 잘할 테니 모든 것을 용서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렇게 그 가정은 다시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내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할까요, 선교사로 파견되어 사는 것이 더 중요할까요?
주님께서 우리를 파견하시는 이유는 아내라는 직무를 통해 선교하라는 목적입니다.
선교보다 높은 하느님의 뜻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궁극적으로 선교하러 세상에 파견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시며 인간으로서 어떻게 하느님을 만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7명의 예수님 제자들이 밤새 물고기를 잡았지만 잡지 못하였습니다.
새벽에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더니 153마리나 되는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153은 ‘하느님의 자녀들’이란 히브리어의 숫자 값이고 7명의 제자는 7성사를 통한 하느님 자녀의 창조를 돕는 교회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은 ‘기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얻는 답은 정말 예수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생각인지 헛갈립니다.
그러나 많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그 말씀의 실천을 통해 탄생하는 것을 본다면 그 말씀이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임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선교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 채충석 요셉 형제는 서울대교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교왕이었습니다.
1998년 공덕동 본당 신자일 때 선교 대상을 받았었는데, 그분은 무려 7개월 동안 700여 명을 입교시킨 적도 있습니다.
그 후로도 꾸준히 선교하여 10여 년 동안 무려 3,000여 명 이상을 입교시켰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채 요셉 형제는 처음에 불교신자였고 아내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제법 큰 사업을 경영하다 사기를 당해 한순간에 삶이 무너졌습니다.
매일 술로 울분을 달랬고 세상을 원망하며 지냈습니다.  
 
몸이 망가져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받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생존확률이 반반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이 두터웠던 아내는 본당 신부님과 수녀님에게 기도를 청했고, 본당의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백방으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의사도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술하지도 않았는데 거짓말처럼 완치된 것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하느님을 믿게 되었고,
주신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보답하기에는 그것으로는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본당 선교분과장을 맡아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선교왕들은 선교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마치 서울대 들어간 학생이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이유는 선교왕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선교하려고 하지 않고 성령의 힘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채 요셉 선교왕도 ‘기도’를 강조합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선교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선교도 성령과 함께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하지 않기에 힘들지 않은 것입니다.
채 요셉 형제는 한 시간 기도하면 세 시간만 선교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기도 시간에 오시는 성령의 힘이 정확히 언제쯤 사라지는지 아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기도할 시간이 부족한 것입니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파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굶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양식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도를 굶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신 뒤 음식을 드셨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당신의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영혼을 구하는 일이고, 아드님의 뜻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뜻에 순종할 때 배고프지 않습니다.
무력감이 사라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신도 음식을 주시지만, 당신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도 구워서 주십니다.
선교하는 가운데 얻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제자들에게도 힘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선교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배고픔을 느끼지 않고 항상 힘에 넘칩니다.
그런 자신을 보며 더는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심을 의심할 수 없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묻지 않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주님의 뜻은 선교밖에 없습니다.  
 
선교를 위해 노력해봅시다.
선교를 위해 기도해봅시다.
이것이 갈릴래아의 삶이고
갈릴래아로 가면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면 항상 배가 부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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