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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4-14 조회수 : 695

4월 14일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사도행전 2,36-41
요한 20,11-18 
 
​예수님을 만나면 다리가 된다 
 
오늘 복음은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내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에서 예수님께서 사라지신 것을 확인하고 돌아간 뒤, 마리아는 여전히 무덤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사 둘이 나타나고 그다음엔 예수님께서 정원지기로 착각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아버지께 가야 하니 마리아에게는 당신 제자들에게 가서 이 모든 것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직접 전하면 될 터인데 왜 마리아에게 이 일을 시키시는 것일까요? 
 
이철환 작가의 ‘연탄길’에 ‘유리조각’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일화입니다.
태수는 집을 나와 지하철에서 남의 지갑을 훔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청년입니다.
그러나 가끔 남동생과 통화는 하고 지냈는데, 어느 날 남동생으로부터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도 병원 앞까지 와서는 막상 엄마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담배 한 대를 태우고 병원을 한 차례 올려다보고는 그냥 병원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태수가 지하철역으로 향할 때 한 젊은 여자가 현금인출기에서 많은 돈을 뽑아
핸드백에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의 눈은 다시 매섭게 변했고 그녀의 뒤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하도 계단을 내려갈 때 뒤에서 부딪히는 척을 하며 핸드백을 순식간에 낚아챘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술을 마시며 방탕하게 지냈습니다. 
 
어느 날 태수가 사람들의 얼굴을 째려보다가 싸움이 붙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에게
모두 연행이 되었습니다.
태수는 결국 그들에게 합의금을 주어야만 풀려날 수 있었지만 당장 가진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동생에게 전화했습니다. 
 
동생은 전화를 받고 곧바로 달려왔습니다.
“이런 일로 불러서 정말 미안하다. 합의금을 마련하지 않으면 형사 입건되거든. 너 말고는 연락할 데가 없었어.” 
 
“형은 왜 그동안 엄마에게 한 번도 오질 않았어?”
“사실은 전에 한 번 병원에 가긴 갔었어. 차마 들어갈 수 없어서 그냥 돌아왔지만. 엄마는 좀 어떠시냐?” 
 
“놀라지마, 형. 엄마, 돌아가셨어. 장례식 끝난 지 아직 일주일도 안 돼.”
“뭐? 왜 돌아가신 거야? 왜?”
“왜는 왜야? 결국은 병원비 때문에 돌아가신 거지.”
“아니, 병원비 없다고 사람을 죽게 해? 그게 병원이야?” 
 
“워낙에 많은 수술비가 들어서 그 사람들도 어쩔 수 없었나 봐.
그래도 병원 측에서 많이 도와줬어.
나중엔 할 수 없이 엄마를 집으로 모셔갔지 뭐. 그러고 나서 한 달도 못 돼서 돌아가셨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죽을 줄 알면서도 그대로 내친다는 게 말이 되냐?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딨어? 이러니까 내가 세상에 정 붙이지 못하고 벌레처럼 사는 거야.
아니 그렇게 돈 구할 데가 없었냐? 내게라도 연락을 했어야지.” 
 
“언제 형이 나한테 연락처 같은 거 가르쳐준 일 있어? 형이 너무했다는 생각은 안 해?
얼마 전 내 여자 친구가 정말 어렵게 엄마 수술비를 마련했었어.
그런데 그걸 내게 갖다 주려고 병원으로 오다가 어떤 놈한테 소매치기 당했대.
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놈을 잡지도 못했어.
그놈의 소매치기만 없었어도.” 
 
태수는 갑자기 온몸이 굳어짐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생각한 게 틀리기를 바라며 더듬더듬 물었습니다. 
 
“그 돈 어디에서 소매치기 당했어?”
“엄마 있던 병원 바로 앞에 있는 지하도 계단에서.” 
 
태수는 동생과 그의 여자 친구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어머니를 죽인 자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한없는 후회와 죄송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된 이유가 어머니에게도 있다고 믿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화해하게 된 것입니다.
둘의 사이가 너무 멀면 중간에서 둘을 화해시켜 줄 희생이 필요합니다.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란 노래 제목도 있듯, 이 세상에는 이런 중재자들이 요구됩니다. 
 
교부들은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마치 아담에게서 하와가 태어나는 장면과 같게 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어떤 것이든 이름은 태어날 때 받습니다.
예수님은 새 아담으로서 새 하와에게 ‘마리아’란 이름을 지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 태어나면 ‘소명’을 받습니다.
아기가 부모의 자녀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면 이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부모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두 발로 걸으려고 노력하게 되고 말을 하기 위해 옹알이를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면 하느님 자녀로서의 일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 일이 ‘다리’가 되어주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야곱의 사다리가 되어 하늘과 땅을 이어주시는 사다리입니다.
천사 둘이 그분이 뉘어져 있던 자리의 머리와 발의 위치에 앉아있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 죽음으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시는 야곱의 사다리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누구나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다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이름을 지어주시는 것을 ‘왕직’이라 한다면, 당신과 제자들을 이어주는 마리아의 역할은 ‘사제직’이 됩니다.
이 사제직은 복음을 전하는 ‘예언자직’을 통해 완성됩니다. 
 
수원교구에서 근래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신자들의 ‘선교’에 대한 의식이 개인적 신심보다 매우 낮게 나왔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신심은 선교와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선교의식이 없으면 개인 신심도 없는 것입니다. 
 
저는 주교님으로부터 사제로 서품을 받고 지금은 꾸르실료라는 단체의 지도신부를 맡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일정을 조율해야 할 때 꾸르실료와 주교님 사이에서 중개를 해 주어야 하는 역할도 있습니다.
이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임명을 받았으면 그 자리에서 다리 역할을 해 주어야만 하는 소명도 함께 받는 것입니다. 
 
‘재키 로빈슨’은 미국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 선수였습니다.
수많은 인종 차별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느 날 로빈슨이 브루클린 구장에서 경기할 때, 쉬운 볼을 놓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많은 사람, 특히 백인 관중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는 그에게 야유를 보내고 욕을 해댔습니다.
그때 백인 선수인 리즈가 로빈슨에게 다가가서 그를 끌어안고 청중을 쳐다보았습니다.
갑자기 관중석이 조용해졌습니다.
나중에 로빈슨은 그의 어깨를 감싸준 동료의 팔이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 주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천사들은 예수님과 마리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예수님은 아버지와 마리아를, 마리아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와 비신자들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선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누구나 다 다리가 되기 때문에, 다리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아직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아닙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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