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내가 주는 것은 반드시 되돌아온다
영국의 어느 제과업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빵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그 제과업자에게는 매일 아침, 버터를 만들어 공급해주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납품되는 버터를 보니 정량보다 조금 모자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두고 납품된 버터를 저울로 일일이 달아 보았습니다.
예측한 대로 정량에 미달하였습니다.
화가 난 이 업자는 버터를 납품하는 농부에게 변상할 것을 요구하며 법정에 고발했습니다.
농부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관은 농부의 진술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집에는 저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터를 만들어 그 제과업자가 파는 1파운드짜리 빵의 규격에 맞추어
버터를 자르고 포장해서 납품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제과업자가 이익을 남기기 위해 그 1파운드짜리 빵의 양을 줄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이 농부는 줄여서 만들어진 빵에 맞추어서 버터를 만들고 납품을 한 것입니다.
내가 주는 것이 항상 나에게 돌아오는 법입니다.
어떤 사진을 보았습니다.
커다란 도미노 벽 앞에서 어떤 신사가 서 있는 그림입니다.
그 도미노 벽을 밀어 쓰러뜨리면 다른 벽들도 하나씩 쓰러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사의 등 뒤에 있는 벽이 그 도미노의 마지막 벽임은 모르고 있습니다.
내 앞의 도미노 벽을 밀어 쓰러뜨리면 그 도미노들이 쓰러지다 결국엔 그 신사 위로
벽이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내가 내보내는 것이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연에게 받는 것은 이미 우리가 자연에게 주었던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자연에게 플라스틱과 공해를 주면 자연은 그 플라스틱을 먹은 생선과 여러 질병을 돌려줍니다.
만약 인간이 자연 때문에 힘들게 된다면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힘들게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이 악해질수록 자연재해나 질병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내가 주는 대로 되돌려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웃에게 판단 받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이웃을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웃이 나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나도 이웃을 무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이웃에게 하는 것이 곧 내가 무엇을 받고 싶은 것인지를 말해줍니다.
사랑받고 싶다면서 이웃을 미워한다면 하느님 정의에 어긋납니다.
한 여인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 여인은 새로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가게의 주인은 자기가 믿는 신이었습니다.
신은 그녀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여인이 무엇을 파는 가게냐고 묻자 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다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인은 외쳤습니다.
“제게 행복과 부, 아름다움과 지혜를 주세요.”
그러자 신은 조용히 웃으며 “미안하네. 여기서는 열매를 팔지 않고, 다만 씨앗을 팔 뿐이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느님은 열매를 주시지 않고 씨앗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 씨앗을 사는 것입니다.
내가 이웃에게 하는 모든 행동이 내가 선택한 씨앗입니다.
만약 성공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웃을 성공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 마음에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성공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웃을 행복하게 하면 됩니다.
개그맨이 자신이 사람들을 웃기고 나서 무엇을 받을까요?
사람들이 행복한 것을 보고 자신도 행복해합니다.
내가 우울하다면 그것은 내가 누군가를 우울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받고 싶다면 그대로 해주면 됩니다.
내가 구원받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웃에게 하는 것이 내가 거두어들일 열매의 씨앗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