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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3-08 조회수 : 505

3월 8일 [사순 제2주일]

 
​깨어진 자 위에 영광과 권위가 내린다 
 
좀 길지만, 존 비비어 목사의 『순종』이란 책에 나온 그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퍼듀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로크웰 인터내셔널사에 취직하여 다니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등부 목사로 한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고등부 부서장의 아들이 울면서 나를 찾아왔습니다. 
집안에서 온갖 경건치 못한 행동이 계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는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그 애의 아버지가 나를 적대시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아이들 네 명이 찾아와 내가 곧 해임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서운해했습니다. 
그의 아들에게서 나온 정보였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 아버지한테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 아이 아버지인 부서장을 찾아갔습니다. 
부서장은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담임 목사 탓으로 돌렸습니다. 
나를 내보내는 것이 담임 목사의 뜻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몇 주가 지났습니다.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교회에 남아 있게 될지 떠나게 될지 모르는 상태라서 우리 집에는 긴장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대출받아 집을 산 상태였고, 아내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돈도 없었고 갈 데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일자리를 구하려고 이력서를 쓸 마음은 없었습니다. 
우리를 그 교회로 인도하신 분이 하느님이라 믿었기에 아무 대안 없이 잠자코 있었습니다. 
 
담임 목사는 결국 나에 대한 해임 안에 찬성했습니다. 
나하고 개인적으로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나는 담임 목사와 그 부서장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내게 자기변호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튿날 담임 목사 사무실에 들어가니 담임 목사님 혼자 앉아 계셨습니다. 
그는 나를 보더니 “하느님이 이곳에 보내신 비비어 목사님을 내가 내보낼 수는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나는 안도했습니다. 하느님은 마지막 순간에 나를 지키셨습니다. 
 
담임 목사는 이어 이렇게 물었습니다. 
"부서장은 왜 목사님을 해임하고 싶어 했을까요?“ 나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담임 목사는 그 사람과 화해하라고 당부했고, 나는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그 만남 직후 그 부서장이 내린 결정에 관련된 문서가 내 손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에는 그 사람의 사악한 동기가 드러나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담임 목사에게 가지고 가려고 했습니다. 
담임 목사 모르게 일어난 일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나는 불편한 감정을 떨쳐보려 45분 동안이나 방에서 왔다 갔다 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이 사람은 부정직했습니다. 그는 이 교회 사역을 망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실상을 담임 목사한테 알려야 합니다! 입증할 자료도 있습니다. 
단순히 감정적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막지 않으면 그 사람의 타락한 행동이 교회 전체에 스며들 것입니다.” 
 
그러나 한껏 열을 내던 내 입에서 불쑥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진상을 폭로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렇죠?” 
 
그리고 그 순간 하느님의 평화가 내 마음에 흘러들었습니다. 
나는 놀라 고개를 저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을 알았기에 나는 증거물을 폐기해 버렸습니다. 
나중에 그 사건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야 나는 비로소 그때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교회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변호하고 복수하는 것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이기적인 동기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나 자신을 세뇌했을 뿐이었습니다.  
 
정보는 정확했지만, 동기는 불순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던가, 내가 교회 뜰에서 기도하는데 그 사람의 차가 들어왔습니다. 
하느님은 그 사람에게 가서 겸손한 자세를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즉시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침묵하셨습니다.  
 
20분 후 하느님은 다시 나를 떠미셨습니다. 
즉시 그에게 겸손한 태도를 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았습니다. 
나는 그 사람 사무실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를 보자 내 입에서 하느님이 나를 다루시지 않았으면 터져 나왔을 것과는 완전히 딴판인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용서를 구했고 그는 마음이 누그러졌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나를 공격하는 것을 멈췄습니다. 
 
그로부터 여섯 달 후 그간 그 사람이 했던 모든 잘못이 담임 목사에게 발각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람이 저지른 일은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심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해임되었습니다. 
심판은 왔으나 내 손을 통해 오지는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내게 하려던 일을 자기가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과 가족을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 상황에 처해 봤기 때문에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그를 놓아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참으로 많은 묵상을 하게 하고 저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었다면 그 명확한 근거를 윗사람에게 내밀었을 것이고, 이것을 밝히는 것이 교회를 위한 길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존 비비어 목사에게서는 ‘깨어짐을 통해 오는 권위’가 드러납니다. 
권위는 내가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의 깨어짐을 보고 주는 것을 받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당신의 권위를 세우셨을까요? 
하느님이 하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감싸는 빛나는 구름과 그 속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음성에 기겁합니다.  
 
아버지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인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산에 오른 사람들뿐입니다. 
그들도 결국은 깨어짐의 영성으로 교회의 권위를 가질 예수님의 후계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그러한 권위를 부여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당신의 뜻을 따르기 때문에 사랑받는 아들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중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고 당부하십니다.  
 
하느님은 아드님이 당신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러 가시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요한 10,17)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다시 얻는 목숨이 곧 아버지께서 주시는 영광이고 권위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을 감싼 ‘빛나는 구름’이 그 영광이요, 
그 목소리가 권위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참된 그리스도교의 권위는 아버지의 뜻을 위해 십자가를 진 사람에게서만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많은 신천지 신도들은 이만희의 잘못된 권위에 그토록 순종하게 된 것일까요? 
사이비 교주들의 이런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나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재림예수라고 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 증명해냅니다. 
그러면 성경을 진리라고 믿는 이들은 그 근거로 교주들을 마치 신처럼 떠받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 안에는 성경 말씀을 실현하기 위한 자신의 깨어짐이나 십자가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세우고 남에게 십자가를 지웁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이웃 사랑을 위해 어떻게 깨어지실 것이고, 그 깨어지신 분을 위해 하느님께서 어떻게 높여주시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된 권위의 근거는 그 사람 등 뒤에 있는 십자가여야 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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