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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1-09 조회수 : 511

1월 9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 내 안의 성령의 작용을 보지 못하는 것이 교만이다 > 
 
하는 일마다 잘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으면 우리 마음은 마치 돼지비계처럼
교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젊은 나이게 자수성가한 어느 청년도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마음에 도취되었습니다.
가난한 어머니에게 집도 사 주고 차도 사주고 이젠 비싼 옷을 사드리기 위해 백화점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아들이 기세등등하게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우리나라에서 지금 제 나이에 저만큼 성공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가난하게만 살아왔던 어머니는 잠시 생각한 뒤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어미가 못 배워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네가 생각하는 숫자보다는 한 명이 적을 거다.”
‘라이언 홀리데이’의 「에고라는 적」은 과거의 성취에 우쭐해 있다가 그 교만으로 망하고 나서야 교만이라는 적을 조심해야 한다는 글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입니다.  
 
이 책에서 미국의 기업가이자 자선사업가인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이른 성공은 그의 에고와 자만심을 자극했지만 그는 에고를 극복하기 위한 독특한 노력을 이어갔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과 밤을 새워가면서 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지금 막 일을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니 네가 지금 굉장한 인물이나 된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정신 차려라.
그렇지 않으면 흥분해서 냉정함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냥 지금처럼 꾸준하게 나아가라.” 
 
자기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교만과 끊임없이 싸우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에고에 잡아먹혀 더 이상 숨 쉴 수도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노력으로만 두 발로 걷게 되었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요?
사람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두 발로 걸을 수 없습니다.  
 
늑대에게 키워졌으면 두 발로 걸을 수 없을뿐더러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말한다면 부모에 대한 공경의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준 사랑을 보지 못하는 것이 바로 불효이고 교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 보지 못한다면 그 사람 또한 하느님 자녀로서 교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자신의 힘으로 신앙을 지니게 되었고 자신의 힘으로 사제가 되었고 자신의 힘으로 멋진 성전을 건축하였다고 믿는다면 그것 자체가 교만입니다.
자신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 사랑인 성령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조차도 성령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은총이 넘쳤는데 그 이유는 그분 안에 성령의 은총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이에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라고 하시며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 그리스도는 그 공로를 성령을 내려주신 아버지께로 돌리고 계신 것입니다.  
 
내 안의 성령의 작용을 보기만 한다면
그것 자체로 성령을 주신 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활동을 느끼는 겸손한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자동차에서 연료의 작용을 아는 사람과 같습니다.
연료게이지에 민감하여 항상 때가 되면 주유소로 향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작용에 민감한 겸손한 사람은 기도에 목숨을 겁니다.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교만해 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로 자신의 모든 능력은 성령을 통하여 나오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그러면 겸손한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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