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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1-14 조회수 : 600

11월 14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지혜서 7,22ㄴ―8,1
루카 17,20-25 
 
< 하느님 나라의 완전한 모델은 예수님을 잉태한 성모 마리아시다 > 

1941년 7월 아우슈비츠 수용소 제 14호 감방에서 한 사람의 탈출자가 생겼습니다.
이에 몹시 분노한 수용소장 프리치는 그 대가로 열 사람을 골라내어 굶겨 죽이는 아사형에 처한다고 하였습니다.  
 
아사형은 큰 고통을 주는 사형법입니다.
굶는 고통보다 물을 마시지 못한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입을 벌려 이빨을 보여라”
이빨이 튼튼치 못하면 팔리지 않던 옛 노예 시장에서처럼, 분노한 프리치는 죄수를 고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열 번째 죄수가 가죠프니체크로 결정되자 그는 울면서 소리 질렀습니다. 
 
“아아, 불쌍한 마누라와 가엾은 내 아들.”
이때 마르고 야윈 어떤 사람이 대신 나서서 프리치 소장을 불렀습니다. 
 
“무슨 일인가? 이 폴란드 돼지야.”
“저 사람 대신 내가 죽겠소.”
“너는 튜울립처럼 말라 죽을 것이다.”
“저는 이미 늙었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천주교 신부입니다.” 
 
그의 짧고 엄숙한 대답에 피도 눈물도 없는 소장은 그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아홉 명이 굶어 죽어가는 동안 힘을 북돋아주었습니다.
형리들은 콜베 신부가 그들을 바라볼 때 눈빛을 감당하지 못하고 “저리로 돌려! 그런 눈으로 보지마.”라고 외쳤습니다.  
 
독주사를 맞고 죽은 콜베 신부가 화장장의 가마솥에서 소각되어질 때 모든 수감자들은 “오늘 콜베 신부님이 새롭게 탄생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콜베 신부 때문에 생명을 건진 ‘가죠프니체크’는 독일의 패망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자신을 대신하여 죽음의 길을 걸으신 콜베 성인의 시복식에 참석하여 교황 바오로 6세도 알현합니다.
가죠프니체크는 눈물을 흘리며 교황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고결하신 콜베 신부님께서 보잘것없는 나를 대신하여 죽음의 길을 가시어 내가 그분 죽음으로 덤의 생애를 살게 되었는데, 신부님의 숭고한 죽음에 걸맞은 삶을 살지 못하여 훗날 그분을 뵙기가 죄스럽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지배하시면 우리가 ‘하느님 나라’가 됩니다.
가죠프니체크에게는 콜베 신부님이 그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피 흘림’입니다.
피에 생명이 배어있기에 그 피를 받아들인 사람은 그 피를 준 사람에게 지배받게 됩니다.
그 지배받음이 가죠프니체크처럼 행복하다면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가죠프니체크는 콜베 신부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받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에페 1, 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또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 죄를 대신해 죽어야만 우리가 죄책감의 지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의로움’과 기쁨과 평화라고 하였습니다(로마 14,17 참조)  
 
의로움은 하느님께서 나의 죄를 아드님의 십자가를 통해 다 씻어주셨음을 믿는 마음입니다.
의로움은 죄가 사해진 것을 믿는 마음이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은 절대 남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죄가 없으면 심판하는 마음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나의 지배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우리 죄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 앞에 그분의 가죽옷을 입고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입고 그분의 의로움 덕분으로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면 기쁨과 평화가 솟구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마음 안에 사시는 그분의 뜻대로 살면서도 저 가죠프니체크의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결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잘것없는 나를 대신하여 죽음의 길을 가시어 내가 그분 죽음으로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되었는데, 예수님의 숭고한 죽음에 걸맞은 삶을 살지 못하여 훗날 그분을 뵙기가 죄스럽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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