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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1-03 조회수 : 534

11월 3일 [연중 제31주일] 
 
지혜서 11,22―12,2
테살로니카 2서 1,11─2,2
루카 19,1-10 
 
< 예수님은 ‘내어주는 기쁨 자체’이시다 > 

어떤 구두닦이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자 한 사람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와서 소년에게 구두를 닦았습니다. 
소년은 구두를 닦으면서 그 승용차를 자꾸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소년은 부자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저 차는 아저씨가 산 거예요?”
부자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우리 형이 사주었어.” 
 
그러면서 부자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도 그런 형이 있으면 좋겠지?”
그러자 소년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제가 그런 형이 되고 싶어요. 
제 동생이 다리가 불편해서 걸을 수 없거든요.” 
 
부자 어른은 받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구두닦이 소년은 내어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출처: 심종미 수녀님 복음묵상 중] 

 
오늘 복음에서 자캐오는 예수님을 알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그 원하는 것이 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에 올라갔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 향하십니다. 
예수님을 원하는 사람은 변화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모신 자캐오는 가진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횡령한 것이 있다면 4배로 갚아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집에 구원에 내린 것이 아니라 당신을 모신 자캐오에게 구원이 내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은 집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모시면 구원을 모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모신 사람이 특징이 어떠한지 잘 보여줍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모신 기쁨으로 가진 재산을 나누어주려고 합니다. 
만약 예수님을 모시지 못했다면 그런 마음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돈만 알던 자캐오가 예수님 때문에 기쁘게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모시는 것과 가진 것을 기쁘게 내어주는 것과 결국 같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서 내어주는 것이 기쁘지 않을 수 없고, 반대로 내어주는 것을 싫어하면서 예수님을 모시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기쁘게 내어주라.’는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곧 ‘기쁘게 내어주심’ 자체이십니다. 
 
보슨톤에 가면 켄모어 스퀘어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켄모어라고 하는 재봉틀 공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켄모어 회사에서 처음에는 재봉틀만 만들었었는데 지금은 냉장고, 세탁기, 전자제품들을 만드는 유명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켄모어 회사에서 재봉틀만 만들어 시판할 때의 일입니다. 
외판 사원들 가운데 어느 외판사원은 남들보다 두세 곱절씩 성적이 좋았습니다. 
매년 한 번씩 외판 성적이 좋은 사원을 불러서 공로를 치하해 주고 보너스도 주었는데 그 외판사원은 내리 3년 동안 일등을 했습니다. 
 
사장이 그를 불러 좋은 성적을 올리는 성공의 비결이라도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그 외판사원이 사장에게 대답을 했습니다. 
 
“사장님, 별다른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저는 상품을 팔기 위해 남의 집에 갈 때에는 그 집 문 앞에 서서 제가 결혼했을 때 그 행복했던 순간을 다시 생각해보며 기쁜 얼굴로 그 집 초인종을 누릅니다.” 
 
기쁜 얼굴을 하면 보는 사람도 즐거운 것입니다. 
상품 하나를 팔아서 기쁨이 넘쳐흐르는 사람의 상품을 사게 마련인 것입니다. 
기쁨이 이미 내가 내어주고 있다는 표징입니다. 
그러니 기쁜 사람을 보면 다른 사람도 전염되어 기쁘게 내어주게 됩니다. 
 
바리사이들은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쁘지 않았습니다. 
기쁘지 않으니 내어줄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모시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습니다. 
기쁘게 내어줄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 본성상 기쁘게 내어줄 수 없습니다. 
만약 기쁘게 내어주고 있다면 분명 하느님의 본성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쁘게 내어줌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 때문에 기쁘게 내어줄 수 있는 세관장 자캐오의 집을 선택하셨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 것이나 자녀가 성공하는 것 등의 모아들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다가가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것을 빼내어 가난하게 만들려고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기쁘게 내어주려는 목적의식 없이 예수님께 다가간다면 우상숭배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기쁨이 나를 기쁘게 하여 이웃도 기쁘게 내어주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는 늙은 나이에 아기를 잉태한 엘리사벳에게 당신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기쁨의 마니피캇을 노래하셨습니다.  
 
그 기쁨의 힘은 당신에게서가 아니라 당신 태중의 아드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자신의 집에 모셔 기쁘게 재산을 내어주는 자캐오의 모습은 예수님을 잉태하여 당신을 기쁘게 내어주시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도 내어주는 기쁨을 배우기 위해 예수님께 다가갑시다. 
예수 그리스도만 함께 계시면 굳이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 자체가 나를 감염시켜 변화시키는
‘기쁘게 내어주심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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