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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1-02 조회수 : 546

11월 2일 [위령의 날 첫째 미사]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복음: 마태 5,1-12ㄴ 
 
< 설익은 떫은 열매 > 
 
얼마 전에 한 수도회를 나온 분과 면담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머물던 수도회가 자신과 맞지 않기 때문에 나왔는데, 이제는 교구사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나이가 너무 많아 교구에서는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역시나 교구에서는 나이 때문에 안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수도회들을 알아보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꼭 맞는 수도회를 찾지 못하여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수도자나 성직자가 되도록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것을 확신하여 다시 평신도로 사는 것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들어오고 싶은 곳에서는 자격이 되지 못하여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고 다른 수도회들도 면담을 하고나서는 안 되겠다고 조심스레 퇴짜를 놓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떤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 심정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저는 이 분에게 한 가지 자신을 돌아볼 것을 부탁했습니다.  
 
만약 이전 수도회가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것인데도 
내 뜻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나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어디든 들어가 속하기 위해서는 먼저 합당한 마음의 수련이 되어져야합니다. 
어떠한 곳에서도 아담과 하와처럼 불만을 가져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를 따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면 내 뜻을 온전히 버리고 그 곳에 죽기까지 속해있을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이 분의 상황이 연옥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연옥에 가는 사람들은 지옥에 속하지도 않고 천국에 속할 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천국에서 가장 작은 사람도 세례자 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완전해지지 않으면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천국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죽으면 모두가 그렇게 완전한 사람이 되어 천국으로 들어갑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완전하게 하느님을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그저 그분을 만나 배우다가 중도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더 이상 배움이 필요 없는 완벽한 신앙인을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한 비유에서 3년간이나 열매를 맺지 못한 나무를 1년 동안 더 열매를 맺도록 거름을 주고 가꾸어 보겠다고 하십니다.  
 
하느님은 부러진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십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설익은 떫은 열매가 달고 토실한 열매를 맺게 되는데 열매가 완전히 익지 않았다고 해서 하늘나라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시간이 부족하여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열매들을 맺게 할 시간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사랑과 자비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 저조차도 
여기도 못 들어가고 저기도 못 들어가는 한 형제를 위해 조금이라도 변화되어 어디에 들어가든 끝까지 살아낼 수 있는 수준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싶은데 하느님께서 하물며 우리에게 부족하다고 
바로 지옥으로 보내실 리야 있으시겠습니까?  
 
물론 개신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공로로 한 번 죄가 용서받았다는 믿음만 있으면 
완전히 깨끗해졌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바로 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연옥의 교리가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완전히 믿는다면야 하늘나라에 바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께서 부르신 제자들에게도 믿음이 없다거나 믿음이 약하다는 말을 
너무도 많이 하셨습니다.  
 
풍랑에 두려워 떨거나 물 위를 걷던 베드로에게 
“왜 이리 믿음이 약하냐?”라고 말씀하셨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려버리시고 나서는 그들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조차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도정’에 있는 것이지 한 번 믿었다고 해서 완전하게 믿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다면 산을 옮겨보라고 하십시오. 
혹은 믿음이 조금 있다고 한다면 물위를 걸어보라고 하십시오.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도 예수님을 하루에 세 번이나 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첫 번째 편지 3장에서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즉, 진정 믿음으로 태어났다면 절대 죄를 지을 수 없고, 죄를 짓고 있다면 아직은 악에 속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저는 연옥이 없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이들에게 과연 죄를 하나도 짓지 않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래도 죄를 하나도 짓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요한이 말하는 또 이런 말씀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1요한 1,8)  
 
우리는 이쪽도 저쪽도 완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어쩔지 모르는 처지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죄도 짓고 하느님도 받아들입니다.  
 
열매로 따지자면 아직은 ‘설익은 떫은 열매’라 버리기에도 아깝고 먹지도 못하는 처지인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가을이 되면 여기저기 단풍이 물들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감정도 풍부해 지는데, 어떤 이들은
‘올해도 한 것도 없이 또 지나가네’라며 안타까워합니다.  
 
단풍이란 잎이 죽어가면서 내는 색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때 나에게 열매가 맺혀있다면 참 아름답게 죽는 모습이겠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죽는다면 안타까울 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의미에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일은 열심히 하고 바쁘게 살지만 실제로 뒤져보면 하늘나라에 가져갈 귀한 열매를 하나도 맺지 못한 사람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앞에 가서 우리가 그분께 바쳐드려야 하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즉 우리들은 많은 일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성령께서 내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일을 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믿음 등입니다. 
결국 믿음에서 오는 행복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 자신을 씻고 그분께서 주시는 성령으로 참 행복의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아닌 세상의 영화만을 위해 산다면 
아주 작은 설익은 열매도 맺혀있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에겐 희망은 없습니다. 
시간을 주어도 믿음의 열매는 생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으면 더 이상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조금이라도 그 믿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했다면 반드시 이 세상이 아닌 하느님께로부터 비롯되는 행복의 열매를 맺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성인들처럼 완전하지는 못할지라도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믿음의 ‘도정’ 중간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완전해 지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이고 그 기간이 바로 연옥의 기간입니다.  
 
열매가 차고 익기 위해서는 가을 따가운 햇볕을 받아야하듯 연옥에서도 따가운 불의 단련을 받습니다. 
순도 99.9%의 금이 되기 위해서는 불로 단련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입장에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문 앞에서 괴로워하는 연옥영혼들에게 연민의 정을 베풀어야합니다. 
그것이 미래의 우리 모습이겠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위령성월은 죽음에 대해 묵상하며 돌아가신 분들과 우리 자신들에게도 큰 은총의 시간이 되는 때입니다.  
 
마카베오서에 죽은 이들의 죄사함을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제물을 보내고 기도하게 한 일이 매우 고귀하고 갸륵한 일이라고 나옵니다.  
 
사실 우리 부모님들이 이 세상에서 조금만 아프더라도 그 부모님을 찾아뵙고 위로해 드려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불구덩이 속에서 이 세상 모든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며 계신데 우리가 그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큰 불효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정말 갸륵하고 고귀한 일인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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