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로마 7,18-25ㄱ
루카 12,54-59
< 자아를 죽이는 관계만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 >
한 여대생이 커플 시계를 맞추기 위해 선물 가게에 들렀습니다.
커플 시계를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오다가 멀리서 남자친구가 동기여학생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남자친구는 그 동기여학생에게 선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물은 동기 여학생이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주었던 것을 양심상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본 여학생은 자신의 남자친구가
그 여자에게 선물을 주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남자는 관계를 정리하는 중이었는데 여자는 양다리 걸치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교실에서도 여자는 남자를 본척만척 합니다.
남자친구의 왜 그러느냐는 말에 대꾸도 안 합니다.
나중에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자 친구는 남자친구에게 뭐 할 말 없느냐고 다그칩니다.
남자는 발뺌을 합니다.
여자가 그 동기 여학생에게 준 선물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남자친구는 자신이 동기 여자를 조금은 좋아했었다는 사실 때문에 솔직히 말하기 싫어합니다.
그냥 별거 아닌 일이라고 변명합니다.
이에 여자 친구는 너무 힘들어 더 이상 못 하겠다며 헤어지자고 합니다.
남자의 자존심과 여자의 상상력이 만나면 이렇게 이별의 열매가 맺힙니다.
[참조: ‘대나무숲 웹드라마-팀플: 연인이 헤어지는 이유 ‘남자의 자존심과 여자의 상상력’]
자존심을 부리거나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는 두 사람의 미래가 과연 좋을 수 있을까요?
자존심이 사그라지고 믿음이 커지는 관계가 아니라면
그 관계는 언젠가 반드시 깨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관계는 항상 불 위에 있는 고기처럼 되어야합니다.
상대가 불 위의 고기처럼 먹기 좋게 구워졌을 때 좋은 관계가 유지됩니다.
불은 성령님입니다.
예수님은 이 불을 붙이기 위해 십자가에서 수난하셨습니다.
성령의 불은 우리 자아를 죽입니다. 헛된 상상력을 죽이고 헛된 자존심을 죽입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먹히기 좋은 양식이 되어갑니다.
이런 관계라야 영원히 지속될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율법학자들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성령의 불로 구워지기를 원치 않고 자신들의 행위로 하느님 마음에 들려고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의 결과는 자명합니다. 영원한 지옥입니다.
자존심만 세워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무당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비참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귀신들이 자신들을 이용하고 쓸모없어지면 해코지를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해코지를 당하지 않기 위해 귀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바리사이-율법학자들도 지금 성령의 불에 죽기를 원치 않아 뻔히 알면서도 지옥의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불살라버려야 하는 죄의 법이 존재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을 죽이는 삶만이 하느님과 이웃에게 맛있고 매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독서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자존심이 죄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이 죄입니다.
이런 것들을 태우지 않고 지니고 있으면 주님께 아무리 예물을 바치고 예배를 드려도
즐겨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자녀가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모기가 드리는 예배로 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통해 내가 자존심의 압제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면 하느님과 이웃이 나에게 어떻게 대하든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죽이는 관계,
그래서 감사가 나오는 관계,
그것만이 영원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