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연중 제18주간 목요일]
민수기 20,1-13
마태오 16,13-23
< 베드로의 믿음과 마귀의 믿음 차이 >
한 목사의 아내가 암이 걸려 온 몸에 퍼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그 여인에게 즉시 수술을 받아야한다고 권했습니다.
그러면 치료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수술을 받는 대신 한 교회에서 열리는 치유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믿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차례가 되자 병의 치유를 받기 위해 앞으로 나갔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치료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완전히 치유되었다고 믿고 외쳤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공공연히 떠벌였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3개월이 못되어 그 여인은 죽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목사는 자신의 치유의 능력에 대해 매우 확신을 하였고 그 힘을 믿지 않으면 신앙이 없다고 꾸짖었습니다.
목사의 아내가 병이 걸려 치유의 기도를 해 주었는데 아내는 그 일이 있은 후 10일 뒤에 죽었습니다.
로이드 존스의 ‘로마서 강해 5권’에 나오는 사례들이라고 합니다.
다음 생명나무 카페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이렇듯 믿음인 것 같은데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지옥에 떨어지는 믿음을 구분할 줄 알아야합니다.
교회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기 이전에 믿음에 대해 시험하십니다.
교회의 반석이 누가 되어야하는지를 알아보시려 하신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 당신을 누가 제일 정확하게 알아보는지 시험하십니다.
어떤 이들은 세례자 요한이나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 온전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던 중 베드로가 나서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이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려주시기 위해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듯 믿음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않고서도 믿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복음에서는 마귀들도 예수님을 알아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 루카 4,31)
이때 예수님은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꾸짖으십니다.
예수님을 알아본다고 해서 다 성령으로부터 비롯된 믿음을 지녔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지옥에 있는 마귀들도 하느님이 계심을 알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던 아담과 하와도
하느님이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쫓겨났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한 뒤 곧 이어 사탄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분명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는 상태인데도 어떻게 바로 사탄이 되어버렸을까요?
그 이유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는 말씀에 들어있습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면 그 믿음은 사탄의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 자신을 들어 높이고 있다면 그 믿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믿음을 가질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 줄어들어야합니다.
더 겸손해져야하고 더 낮아져야하며 자신은 더 의미 없어져야합니다.
내가 받은 은총으로 나를 영광스럽게 하고 있다면 그 믿음은 사탄의 믿음인 것입니다.
사탄의 무리들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하느님을 이용합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그분의 뜻이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또한 바라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모세를 통해 하느님은 광야에서 목말라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그냥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오도록 명령만 하라고 했지만 모세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지팡이로 그 바위를 두 번 칩니다.
자기도 무슨 일을 해야 이스라엘 백성에게 면목이 슬 것 같아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만큼 믿음이 줄어든 것입니다.
비록 물이 흘러나오기는 했지만 모세와 아론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한 까닭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믿음은 ‘영광’과 직결됩니다.
나의 영광을 추구하기 위한 믿음은 사탄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만을 위한 믿음은 천국의 영광을 받는 믿음입니다.
나의 영광을 위한 믿음은 하느님을 이용하기 위한 단순한 지식에 불과합니다.
내가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하는 것처럼 주님의 영광만을 바라고 믿는지, 아니면 하느님을 통해 내가 무언가 부족한 것을 채워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지는 않는지 살펴야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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