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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7-01 조회수 : 420

7월 1일 [연중 13주간 월요일] 
 
창세기 18,16-33
마태오 8,18-22 
 
< 문을 좁히는 것이 잘못일까? > 
    
“해군 특수부대는 장시간 수영에 완벽해야 합니다. 그중 하나는 야간 수영입니다. 
교관은 물에 들어가기 전, 훈련생들에게 즐겁게 설명을 합니다.  
 
수많은 상어들이 득실거리는 센클렌이라는 바다 안에서요. 
하지만 그들은 장담했습니다. 
아직까지 상어에게 잡혀 먹힌 훈련생은 없었다고요. 
적어도 그들이 기억하기엔 말이죠.  
 
그러나 우리가 배운 것은 상어가 우리 주변을 빙빙 돌더라도 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헤엄쳐 도망가지 마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만약 야식에 굶주린 상어가 당신에게 돌진한다면 모든 힘을 모아서 상어의 얼굴에 펀치를 날리세요. 
그러면 돌아서서 도망갈 것입니다.  
 
이 세상엔 수많은 상어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수영을 완벽하게 하고 싶다면 상어도 다룰 줄 알아야합니다. 
그러니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상어에게 등을 보이지 마십시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으세요? 침대 정돈부터 하세요.” 라고 한 해군 대장의 유명한 연설 중 일부분입니다. 
이 연설 안에는 상어와 정면으로 맞서 얼굴을 때릴 용기가 없다면 해군 특수부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보통 훈련병 중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수가 30%정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잘 모르고 그 부대에 지원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런 훈련을 견딜 능력이 있다고 잘못 판단하고 지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특수부대에 들려는 지원자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도회들이 입회자가 없다고 난리지만 마지막까지 지원자가 있는 곳은 엄격한 봉쇄수도원들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힘든 곳에서 버틸 때, 그만한 보람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따르다보면 길거리에서 잘 일도 많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런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면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한 제자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당신을 따르기로 했으면서 아버지 장사는 왜 지내려고 하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율법학자가 함께 듣고 있었다면 기겁을 했을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에 따라 아버지 장사도 지내지 않는 아들은 율법학자의 시각으로는 인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로써 율법교사에게 당신을 따르려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율법의 고정관념까지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함께 살고 싶어 결혼을 해도 많은 수가 이혼을 합니다. 
좋은 사람을 고르고 골라 함께 사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얼마나 힘들까요?
그렇지만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면 어떤 것까지 견뎌야하는지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명확히 말씀하셨고 감당할 수 있겠거든 따르라고 하십니다. 
 
백종원 씨가 진행하는 골목상권 살리기 프로그램을 보면 가끔 전문가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가게들을 만나게 됩니다. 
손님에 대한 예의나 장사를 위한 기본적인 가격책정, 혹은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 실력도 안 되는데도 장사를 시작한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본인들 입장에서는 잘 될 것이라고 믿었겠지만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100% 망할 수밖에 없는 가게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장사에 뛰어들 수 있는 이유는 명확한 기본규정을 알려준 사람이 주위에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알아야 망하지 않을 규정들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주일미사도 나오기 힘들어 냉담 하는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들을 잡기 위해 그 규정들을 더욱 낮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냉담 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입니다.
더욱 잘못 알고 들어오는 신자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신교에 들어가려면 십일조를 철저하게 내고 주일엔 반드시 가게 문을 닫고 쉬어야한다는 것쯤은 명확히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몇 년 전 그들의 주일 예배 참례율은 80%를 넘었습니다. 
천주교는 30% 이하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그들보다 더 엄격한 규정을 지켰고 오랜 기도와 희생극기를 하여야 했습니다. 
아침기도, 저녁기도를 거의 한 시간 동안 바쳐야했습니다. 
현재 수도자들 수준으로 평신도들이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때 수많은 순교자가 나왔고 교세는 커져만 갔습니다. 
 
들어오는 문이 좁더라도 일단 들어오면 철저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도록 규정과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더 예수님께서 하신 방식과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느슨하게만 해서 더 많은 사람을 받아들이면 너도나도 그 정도만 하면 되는 줄 알고 모두가 다 느슨해질 수 있습니다.  
 
수도회는 수도자처럼 살아야하고, 성직자가 되면 또 그렇게 살아야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오늘 복음말씀에서 하신 것처럼 집도 없을 것이니 알아서 자야한다고 하고 아버지 장례에도 갈 수 없다고 한다면 누가 따르려고 할까요? 
그러나 그런 것까지 따르겠다고 함께 모인 이들의 자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많이 들어오도록 문을 넓히는 것만이 꼭 좋은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복음말씀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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