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연중 12주간 수요일]
창세기 15,1-12.17-18
마태오 7,15-20
< 나의 나무에서 맺히는 열매들을 보자 >
미국의 뉴멕시코주에 열두 살 된 흑인 소년이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아들아, 네게 남겨줄 것이 아무 것도 없구나. 그러나 이 말씀을 꼭 기억하거라.
인생을 살아가는데 세 가지 보석이 있단다. 그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
소년은 눈물로 어머니를 떠나보냈습니다.
1년 전 아버지를 잃은 소년은 고아가 되어 할머니의 집에 맡겨졌습니다.
소년은 소아마비 장애인이어서 거동이 불편했습니다.
인종차별과 가난과 병마가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어머니에게 배운 ‘믿음’ ‘소망’ ‘사랑’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는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195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미국의 정치학자 랠프 번치 박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며 충고하십니다.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내가 참된 예언자라면 나는 참으로 좋은 열매들을 맺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신앙생활을 해왔다면 나의 자녀들이 좋은 열매를 맺고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의 삶과 가르침이 곧 예언이 됩니다.
그리고 그 예언에 따라 나의 자녀들이 열매 맺힙니다.
일본의 자녀교육의 핵심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오랜 사무라이 문화에서 지내야했기 때문에 남에게 폐를 끼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문화를 여전히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니 시골 거리를 가더라도 휴지 하나 버려져 있는 것을 보기 힘듭니다.
부딪히면 무조건 자기가 먼저 미안하다고 합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사회의 문화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미국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이 주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는 아마도 그리스도교 문화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기부문화가 잘 발달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자녀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을까요?
혹시 거짓 예언을 알려주고 있지는 않을까요?
마치 경쟁에서 이기고 돈과 권력을 많이 차지해야 행복하다고 알려주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러면 돈과 권력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열리고 나쁜 나무에서 나쁜 열매가 열립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예언을 받아들일 환경에서 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가출로 가세는 급속히 기울었습니다.
아버지는 순간을 즐기는 책임 없는 예언을 자녀에게 준 것입니다.
어머니는 탄식과 저주를 퍼붓다가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소년은 부모를 통하여 돈과 권력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장하여 정치인이 되었고 전쟁을 주도했으며 무자비한 인종청소를 자행하였습니다.
13년간 발칸의 도살자로 불리며 수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가 유고슬라비아 독재자인 밀로셰비치입니다.
그는 2001년 4월 세르비아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해 7월 네덜란드 헤이그로 이송되어 전범으로 재판을 받던 중 2006년 3월 11일 감옥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떤 예언을 남겨주고 떠나야할까요?
믿음, 소망,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할까요,
아니면 돈과 권력, 성공 등을 위해 경쟁해야 한다고 말해주어야 할까요?
거짓 예언자들은 겉으로는 양의 탈을 쓰고 있지만 속엔 이리가 들어있습니다.
좋은 가르침처럼 위장하여 가르치지만 결국 세상에서 물질이나 명예의 노예가 되어 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예언자들인지 우리의 자녀들을 바라보며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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