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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2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6-21 조회수 : 409

6월 21일 [연중 11주간 금요일] 
 
코린토 2서 11,18.21ㄷ-30 
마태오 6,19-23 
 
< 눈 맑게 하기 >
  
김상운 기자의 지인이 어느 날 딸의 일기장에 “죽고 싶다”라는 내용의 글이 적힌 것을 보았습니다. 
어릴 땐 책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소위 날라리 아이들과 어울리며 가수가 되겠다고 노래만 듣는다고 합니다. 
아마 범생이 오빠에게 부모의 모든 관심이 쏠리는 것에 대한 반항인 것 같습니다. 
 
“수진아, 너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러니? 이젠 제발 정신 좀 차려!”
엄마는 혼내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고, 사정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수진이는 점점 더 멀어져갔고 대화도 완전히 끊겨버렸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그녀는 한 학부모 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하였습니다. 
교육을 받으며 분명히 깨달은 것은 ‘문제가 수진이가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수진이에게 학원 다니기 싫으면 안 다녀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수진이는 다니던 학원을 모조리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딸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딸이 좋아하는 라디오 음악프로도 함께 듣고, 가사도 함께 외우고, 노래도 함께 따라 불렀습니다.  
 
딸이 좋아하는 가수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스크랩도 해주었습니다. 
날라리 친구들을 데려오면 진심으로 따듯하게 대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딸이 이해가 되었고 왜 음악에 빠져들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등교하러 집을 나서던 수진이가 물었습니다.
“엄마, 내가 공부 못해도 나 사랑하지?”
“물론이지. 넌 언제나 내 딸이니까.” 
 
어느 날 그녀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소리도 없이 들어온 수진이가 뒤에서 슬며시 그녀의 한 손을 잡았습니다. 
 
“엄마, 나 이번 중간고사에서 100등도 넘게 올랐어. 반에선 5등!”
그녀의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엄마, 감사합니다. 기다려줘서.”
수진이를 꽉 껴안은 엄마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출처: ‘왓칭 2; 공간을 넓힐수록 정말 ‘나’가 마법처럼 커질까’, 김상운, 정신세계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은 많은 경우 “눈은 마음이 창”이라고도 합니다. 
마음이 눈의 맑기를 결정하고 눈의 맑기가 몸을 밝기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의 이야기를 하시기 전에,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다. 
눈과 보물이 무슨 상관일까요? 
예수님은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바라는 것들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재물을 좋아하면 마음은 이 세상에 머물게 됩니다. 
이 세상은 땅을 뜻합니다. 
땅의 것을 좋아하면 마음은 땅에 머물게 되고 눈은 그 땅의 흙먼지와 같이 흐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사람의 눈을 통해 그 사람이 어디에 머무는 사람인지 어렵지 않게 알게 됩니다. 
땅에 머무는 사람의 눈빛은 “나는 너를 이용하겠다!”고 말합니다. 
 
수진이 어머니는 처음에 마음을 이 세상에 두었습니다. 세상 것을 희망하는 부모였습니다.
오빠처럼 수진이도 공부를 잘 해서 자신에게 자랑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 눈빛을 수진이가 읽은 것입니다.  
 
세상에 마음을 둔 사람의 눈빛은 ‘너 왜 그렇게 살아서 날 만족스럽게 하지 못하니?’ 라는 비난의 눈빛입니다. 
그런 비난의 눈빛을 받은 사람은 ‘난 저 사람의 만족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희생양이구나!’ 라고 여겨 자존감을 잃게 됩니다. 
칭찬해주어도 역시 내가 좋아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자신이 자랑스러워지니까 칭찬해주는 것임을 눈빛을 통해 읽어낼 수 있습니다. 
 
나의 눈빛을 맑게 해야 합니다. 
그 맑은 눈으로 바라봐줘야 상대도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맑은 눈은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을 끊고 하늘의 것을 바랄 때 얻어집니다.  
 
땅을 기어 다니는 뱀으로 상징되는 것이 자아입니다. 
자아의 욕구는 눈을 흐리게 만듭니다. 
 
따라서 내가 죽으면 눈이 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눈으로 바라보면 상대는 항상 비난받는 느낌을 받아 주눅 들거나 화가 나기도 합니다.
나로 바라보면 나의 눈빛은 뱀의 눈빛이 되고 하느님으로 바라보면 하늘의 눈빛이 됩니다.
세상 것에 대한 욕망을 버려야겠습니다. 
아니, 나를 버려야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봐야겠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내가 아닌 예수님에 의해 대접받는 느낌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돌려받는 사랑도 많을 것입니다.  
 
눈빛은 나의 주인을 누구로 정하느냐에 따라 저절로 바뀝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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