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연중 10주간 토요일]
코린토 2서 5,14-21
마태오 5,33-37
< 나의 감시자가 되어라 >
일리노이 대학의 디너(Ed Diener) 교수는 어떤 학생들에게는 거울을 마주 본 채 문제를 풀도록 하고, 다른 학생들에게는 거울을 등지고 풀도록 해보았습니다.
이윽고 시험 종료를 알리는 “따르릉” 소리가 울렸습니다.
“따르릉” 소리가 났는데도 계속 문제를 푸는 것은 부정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거울을 등지고 문제를 푼 학생들은 한 문제라도 더 풀려고 낑낑거리고 있었습니다.
반면 거울을 마주 본 학생들은 순순히 펜을 놓았습니다.
다른 심리학자도 이와 비슷한 실험을 하였는데
한 교실의 아이들에게 한 사람당 사탕 하나씩만 집어가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체의 34%가 두 개 이상 집어갔습니다.
다음번엔 사탕 바구니 앞에 거울을 세워놓아 아이들이 자신들이 하는 행위를 스스로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두 개 이상 집어간 학생의 비율이 4분의 1로 줄었습니다.
[출처: ‘왓칭; 나 이상의 나 바라보기’, 김상운, 정신세계사]
어떤 영화 대사에 보니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믿지 마라. 오로지 네 자신만 믿어라.”
아무도 믿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사람은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
사람이 다 약하다면 자신도 약한 것입니다.
자신을 포함해 누구도 믿지 말아야합니다.
오로지 믿을 수 있는 분은 변하지 않으시는 하느님뿐이십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을 믿었기 때문에 하느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예 맹세하지 마라.”라고 하십니다.
맹세는 자신을 믿을 때 하는 행동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 세 번씩이나 배신합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인간은 나약합니다. 나약하기만 한 게 아니라 악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어 “너희는 말할 때에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나 ‘아니요’라고 결정하는 것이 진짜 나입니다.
나머지 모든 생각은 다 자아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것이 악입니다.
자신을 믿는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자신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악의 노예가 되고 악이 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믿지 않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믿지 않는다면 감시를 해야 합니다.
믿지 않아야 하는 것들과 함께 몰려다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거울을 놓아두면 자신이 자신의 감시자가 될 수 있고 그러면 자신의 욕구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자신에 빠져 허우적댑니다.
그리고 어디로 떠내려가는지도 모릅니다.
물 위로 올라와야합니다. 물 위에 서면 자기 자신을 발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기도가 시작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 자신을 바라보게 하심으로써 자신의 발밑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합니다.
하와가 뱀과 대화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등 뒤에 있던 하느님을 바라보았다면 뱀의 꾐에 휩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설문조사 결과, 80세 이상 노인들의 90% 이상이 자신의 인생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후회하는 것은 세계 여행이나, 많은 돈, 성공 등의 거창한 것을 이루어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못 해 준 것”, “가족에게 좀 더 따듯하게 말을 건네지 못했던 것”, “돌아가신 어머니께 좀 더 친절하지 못했던 것” 등의 사소한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작은 사랑을 베풀지 못했던 것이 죽을 때 가장 후회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게 했던 장본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에 정작 해야 했던 일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은 끊임없이 출세하라고 하고 즐기라고 합니다.
만약 한 발 떨어져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그렇게 쓸려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결코 자신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기도를 통해 마치 거울로 자신을 보듯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살피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것은 항상 그리스도의 눈으로 마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듯 자신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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