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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5-17 조회수 : 420

5월 17일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독서 : 사도행전 13,26-33
복음 : 요한 14,1-6 
 
<​ 기도의 열매 > 

1970년대 에너지 위기와 석유파동 기간에 네덜란드의 연구자들은 국가의 에너지 사용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은 암스테르담 인근의 한 교외에서 몇몇 주택 소유자들이 이웃에 비해 30%나 에너지를 덜 사용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집의 크기나 전기 사용량당 요금은 비슷했는데 한 가지 예외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전기 계량기의 위치였습니다.
어떤 집은 계량기가 지하에 있었고, 어떤 집은 현관 복도 위쪽에 있었습니다. 
쉽게 추측할 수 있듯이, 현관 복도에 계량기가 있는 집이 전기를 덜 사용하였습니다. 
에너지 사용량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어서 사용량이 현저하게 낮아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 ‘아주 작은 습관의 힘; Part 2. 첫 번째 법칙, 분명해야 달라진다’, 제임스 클리어 지음, 
이한이 옮김, 비즈니스북스] 
 
서양 속담에 하루 사과 하나면 의사를 만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사과를 거의 먹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냉장고에서 썩기까지 합니다.  
 
스스로 찾아서 깎아먹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과를 많이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식탁 위에 놓으면 된다고 합니다. 
오다가다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해서 물을 책상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이전보다는 현저하게 많이 마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침마다 몸무게를 재는 것도 그렇습니다. 
몸무게가 늘어난 날은 안 되겠다 싶어 그 날은 좀 절식을 하게 됩니다.  
 
이렇듯 내 자신을 측정할 수 있는 무언가를 꾸준히 볼 수 있다면 삶의 균형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과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고 하십니다. 
분명 예수님은 아버지께 향하시고 계십니다. 
아버지를 향한다는 말씀은 아버지를 바라보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를 향하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은 그분께로 향하는 사람만 그분을 볼 수 있다는 의미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요한 1,18)
여기에서 “가장 가까우신”이라는 말은 본래 희랍어로 직역하면 “품을 향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아버지의 품을 향해야 아버지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를 향한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를 보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아버지를 보아야 내가 보입니다. 
계량기를 보면 내가 소비하는 전기와 나의 삶이 보이듯, 하느님을 보면 내 삶이 보이는 것입니다. 
 
시선을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압니다. 
자기 자신이 엄청난 죄인임을 압니다. 
하느님 앞에서면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큰 죄인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에 대한 아빌라의 데라사 성녀의 말을 들어봅시다. 
 
“사랑하는 따님들이여, 여러분이 덕에 나아갔는지 알고 싶거든 한 가지 아는 법이 있습니다. 
누구나가 자기를 그 중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고, 이 생각이 행동으로 드러나서 남에게도 선과 이익을 끼치는 것입니다.”(완덕의 길, 제18장 7항)
야곱이 에사우의 장자권을 가로채고 20년 만에 에사우를 만나는 때가 되었습니다. 
에사우는 400명의 장정들을 데리고 야곱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겁을 먹은 야곱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에사우를 향해 보냈지만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래서 밤새 기도를 드립니다. 
이것이 천사와 씨름하는 상징으로 표현돼 있습니다. 
 
천사는 야곱의 끈질김에 결국 축복을 주기로 합니다. 
그 축복이란 야곱의 정강이뼈를 부러뜨려 에사우 앞에서 절뚝거리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에사우를 보고 일곱 번 절하며  
 
“정녕 제가 하느님의 얼굴을 뵙는 듯 주인의 얼굴을 뵙게 되었습니다.”(창세 33,10)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축복입니다.  
 
기도를 한다는 말은 하느님 앞에 선다는 뜻입니다. 
그분 앞에 서면 나의 처지가 보이고 그러면 세상 누구보다 큰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모든 이들이 나보다 커 보이고 심지어 원수까지도 하느님 얼굴을 뵈옵는 것처럼 바라보게 됩니다. 
모든 이들의 얼굴이 하느님처럼 보이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이미 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길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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